가을의 산사(山寺)에는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절집의 고즈넉한 가을, 고요함 속에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를 기억할 수 있는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유년기의 추억은 산사의 풍경소리와 함께 한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은 이따금 '풍경소리'라는 포스터 앞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을 것이다. 짧은 글귀 앞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그런 순간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1999년부터 지하철 역사에 게시된 '풍경소리' 포스터는 선과 명상, 그리고 불교 색채가 짙은 글귀들이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의 내면세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좋은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널리 나눈다는 법보시(法布施)의 정신에 꼭 맞는 활동이다. 영혼의 소리와 지혜의 샘을 찾아 떠나는 글귀들이 한데 모여서 한 권의 단아한 책으로 나왔다. 그냥 펼치면 된다.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면 된다. 책 속에 '하루를 살듯이'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일을 시작함에 평생 동안 할 일이라 생각하면 어렵고 지겹게만 느껴지는 것도 하루만 하라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슬프고 괴로워도 오늘 하루만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백년도 하루의 쌓임이요, 천년도 오늘의 다음날이니 하루를 살 듯 천년을 살 듯 살아보면 어떨까요' 누구에겐들 살아가는 길에 어려움과 괴로움이 없겠는가. 법현 스님의 이야기처럼 하루를 살 듯 천년을, 천년을 살 듯 하루를 가보면 어떨까. '번뇌하는 그대의'라는 제목 밑에는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고 사치스런 마음이 생기나니.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이익이 분에 넘치게 되면 어리석은 마음을 돕게 되나니'라는 글귀도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진짜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 '큰 강물은 소리없이 흐른다'는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불교를 전하는 비영리단체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책이 산사에 울리는 맑은 풍경소리처럼 우리의 지친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그늘진 곳에 스며드는 햇살과 같이 사람들 가슴 속에 생각의 뜰을 가꾸어 주길 바랍니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염원이 멀리 멀리 퍼져서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길잡이가 되기 바란다. 공병호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