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좋은 때다. 이른 아침의 찬기운은 손가락이 곱을 정도이지만 머리와 가슴 속을 차분히 다스려 준다.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은 또 잊혀졌던 기억을 되돌려 앉힌다. 지난 시간을 곱씹고 내일을 그려보는 한 해의 끝자락. 흙길 위에서라면 그 비움과 또 다른 채움의 뼈대를 세우는 일이 수월해질까. 하늘재 흙길로 향한다. 태백산에서 크게 휘어 뻗어내린 백두대간 줄기 위 포암산과 부봉 사이에 놓인 영남.충청의 옛 연결통로. 문헌상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고갯길이다. 신라 8대왕 아달라이사금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뚫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의 기록이다. 당시에는 계립령, 이후 마골점 대원령 등으로 불리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고개라고 해서 하늘재란 이름표가 붙게 되었다. 이름처럼 높지 않은 하늘재(5백25m)는 수많은 세력다툼의 접점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조선조 초 바로 옆의 새재길 개척으로 잊혀지게 된 이 고갯길은 그러나 한 역사인물의 발자취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긴 아버지 경순왕에게 등을 돌리고 하늘재를 넘어 금강산을 향했던 마의태자가 그다. 아스팔트 도로가 깔린 문경 갈평리~하늘재 고갯마루가 아닌 흙길로 남아 있는 반대쪽 충주 미륵리에서 산책을 시작한다. 고갯마루까지 2km 정도, 넉넉히 잡아 왕복 1시간30분 길이다. 매표소에서 3백m쯤의 미륵리 절터가 눈길을 붙잡는다.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설명이 붙은 귀부비석좌대 석등 5층석탑(보물 95호) 석불입상(보물 96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석불입상은 마의태자의 손길이 녹아 있다는 전설이 전한다. 함께 길을 나선 덕주공주의 이야기가 전하는 덕주골의 덕주사지마애불(보물 406호)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역사.자연탐방로를 만들기 위해 공사가 진행중인 고갯길로 접어든다. 가파르지 않은 길은 내내 포근하다. 머리 위로 흐르는 바람은 소리뿐이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의 바늘잎이 소리없이 떨어진다.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게 금가루를 뿌린 것 같다. 떡갈나무며 참나무 낙엽으로 덮인 길이 금세 옅은 황금색으로 빛난다. 곧게 뻗은 낙엽송은 포암산(베바위산) 정상 일대의 펼쳐 놓은 듯한 하얀바위, 남색하늘과 어울려 보기드문 색감을 자아낸다. 마의태자가 지날 때도 이랬을까. 경순왕이 나라를 포기하자고 했던게 이즈음이 아니던가. 어느새 고갯마루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다 되돌아 선다. 나뭇가지에 감을 꽂던 아주머니가 쉬었다 가라며 건네준 사과가 꿀맛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해 보살핀다는 관자재보살에서 따온 듯한 마을이름(관음리)에 어울리는 넉넉한 정을 만끽한다. 다시 관음리와 한고개 너머 있는 미륵리. 햇살이 한결 따사로워졌다. 충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