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진 날씨, 선인들의 멋과 지혜가 스민 묵향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서화는 동양문화의 중심에 서 왔던 예술 장르. 붓과 먹이 연출하는 안온하고 그윽한 정취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겠다. 이달에 열리는 굵직한 서화전으로는 '퇴계 이황전'(9일-12월 9일ㆍ예술의전당)과 '송시열-송준길 서예전'(16-20일ㆍ수원의 경기도문화예술회관), '21세기 한국 서예ㆍ문인화가 초대전'(17일-내년 1월 18일ㆍ성균관대박물관)이 있다. 장소가 서로 떨어져 있어 동시 관람이 쉽지 않으나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한 자락의 서화 흐름을 짚어 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퇴계가 16세기를 풍미했다면 송시열과 송준길은 17세기를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전시는 서화의 현주소를 한 눈에 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예전에서 감상자를 주눅들게 하는 것은 한문 글씨. 문장의 의미를 몰라 일반인은 작품을 대충 둘러보거나 아예 전시장을 외면하곤 한다. "의미는 부수적인 것이다. 글자 이미지를 중심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은 그래서 초심자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한자가 사물의 형상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런 조언은일리가 있다. ▲퇴계 이황전 = 예술의전당이 한국서예사특별전 21번째 순서로 마련한 서예전으로 퇴계 이황(1501-1570) 탄신 500주년 기념전을 겸한다. 출품작은 퇴계의 친필유묵 60여점과 등 그림 10여점을 합쳐 모두 100여점이다. 퇴계는 도학과 시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글씨는 그동안 별로 조명되지 않았던게 사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유묵을 통해 그의 문예와 철학세계의 형성과정을 살피는 데 좋은 기회다. 이현보, 이언적, 양사언, 류성룡 등 사우(師友)와 문인(門人)들의 묵적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출품작에는 퇴계가 타계 나흘 전에 남긴 유언장 와 현존 유일의 국한문 혼용체 등도 있어 눈길을 끈다. 예술의전당은 퇴계의 사상ㆍ시ㆍ그림ㆍ필법ㆍ학파ㆍ생애를 유기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공간을 6개로 구분했고 관련 도록도 펴냈다. ☎ 580-1513. ▲송시열-송준길 서예전 = 우암 송시열(1607-1689)과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남긴 서예 탁본을 한 자리에 모은 특별전으로 한신대박물관이 주최한다. 이번 행사에는 이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김창협, 이재, 민우수, 정조대왕 등의 서예탁본 50여점이 소개된다. 아쉬운 게 있다면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우암과 동춘당은 조선 선비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양송체(兩宋體)를 낳은 장본인.여기서 말하는 양송(兩宋)은 물론 이들을 지칭한다. 석봉 한호의 서체에 뿌리를 댄양송체는 율곡학파를 중심으로 계승돼 조선후기에 크게 선호된 것으로 전해진다. ☎031-370-6594. ▲21세기 한국 서예ㆍ문인화가 초대전 = 성균관대 주최로 한국미술협회, 한국서예가협회, 한국서가협회 등 3대 서예단체 소속 회원이 출품한다. 이 단체들이 한 자리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미경씨 등 서예가와 박진태씨 등 문인화가 219명이 참여해 한글, 한자, 문인화 등을 선보인다.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시점에서 한국 서예와 문인화의 현주소를 살펴 그 방향을 새롭게 모색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송하경 성균관대 박물관장은 "독자 필법을 개발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는 스승의 서체를 그대로 계승하고자 했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라고 말한다. 출품작 도록도 함께 발간됐다. ☎ 760-1217.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