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다 배격한다. 지금까지의 인류발전의 역사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진지한 노력만이 불멸의 힘을 가진다는 진리를 실증해 주고 있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높여 인간의 가치를 끝없이 높여 나가려고 노력하는 인류는 영생불멸한 것이며 자만을 모르고 계속 노력하는 인류의 미래는 끝없이 휘황찬란하다는 것이 인간중심철학의 결론이다" 북한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장엽씨는 최근 출간한 「맑스주의와 인간중심철학」 시리즈 3부작과, 이 내용을 정리했다고 할 수 있는 「인간중심철학의 몇 가지 문제」(시대정신)에서 그 자신이 주장하는 인간중심철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어투로 보아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마지막 구절을 연상케 한다. 이번 시리즈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된다. 우선 황장엽이라는 인물이 철학자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지난 97년 2월 12일 남한으로 망명한 그는 주체사상의 이론적 완성자로 알려져 있음에도 탈북 이후 그의 활동에서 우리는 좀처럼 '철학자 황장엽'의 면목을 볼 수가 없었다. 97년 이후 그가 낸 단행본으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를 필두로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가 있으나 대체로 '북한 때리기'나 '햇볕정책 때리기' 종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에 나타난 황장엽을 철학자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독자가 그의 논조에 동조를 하건 말건 우선은 대단히 논리적인 구조를 지닌 주체사상, 즉 인간중심철학의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황장엽 주체사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봐도 좋다. 이 시리즈는 또한 전형적인 사회주의권 체계를 따르고 있다. 그 분야가 철학이건 다른 분야건 대체로 방대한 연구성과와 함께 그것을 조목별로 정리한 한 권짜리 단행본을 함께 내고 있는데 「인간중심철학」 시리즈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시리즈는 인간중심철학을 마르크시즘과 접목시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접근하고 있다. 1권이 '인생관'이며 2권 '사회역사관', 3권 '세계관'이 뒤따른다. 황장엽은 주체사상을 "인민대중의 운명개척과 사회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주체를 내세우고 주체를 강화하며 주체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철학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에 의해 전체주의와 계급주의, 봉건주의를 결합시킨 수령절대주의 사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망명 이전 북한에서 써둔 원고를 손질했다는 이번 시리즈에서 황장엽은 "나는 사회주의에 충실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인류)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한 인본주의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사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황장엽은 세간에 말하는 것처럼 이른바 우익 계열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그가 처한 현실때문에 우익으로 비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생각이 짙게 든다. 그는 국가를 기본단위로 하는 생활공동체 대신 인류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세계적인 생활공동체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현재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자주적 지위와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내용을 더욱 정확히 규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상적이라느니, 뜬구름 잡는다느니, 모순되는 대목이 많다느니 하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하기야 이른바 철학사상 체계치고 그렇지 않은 게 있을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