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시집 「악의 꽃」을 발간하자 일간지 르 피가로는 "보들레르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때가 있다...이 책은 온갖 광란과 마음의 부패가 개방된 병원"이라는 악평을 실었다. 「악의 꽃」으로 처음에는 대중의 야유를 받았지만 뒷날 시의 역사를 다시 쓰게한 보들레르의 삶과 문학을 정리한 평전이 나왔다. 보들레르를 전공한 윤영애 상명대 불어교육과 교수가 쓴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민음사). 물려받은 유산으로 댄디 생활을 하다 낭비벽으로 파산을 맞은 보들레르가 1857년 지난한 시작(詩作)의 결실인 「악의 꽃」을 발간했다. 도시생활의 권태와 환멸, 악덕과 죄악, 분열된 영혼의 외침이 흘러넘치는 이 시집이 나오자마자 혹평과 공격이 빗발쳤고 보들레르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작품을 냈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다. 그는 법정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문학비평과 미술비평,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번역 등을 계속하지만 늘어나는 빚과 매독 재발 등 건강악화로 현실적으로 '실패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병상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1949년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1857년의 판결을 파기하고 판결정지 명령을 내린다. 명예회복에 거의 한 세기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한때 '갑판에 추락한 뒤 뱃사람들에게 조롱받는 알바트로스'였던 그의 문학은 '현대시의 효시' '도시적 감수성의 대명사'로 추앙받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됐다. 보들레르는 생전에 작가 테오필 고티에의 삶과 문학을 평한 글에서 "생애가 사건과 모험으로 가득한 이들의 전기는 오히려 쓰기 쉽다. 그러나 여기(고티에)에는 오직 정신적인 거대함만이 있을 뿐이다. 더없이 극적인 모험들이 그의 두뇌 둥근 천장 밑에서만 묵묵히 연출되는 한 사람의 전기는 전혀 다른 계열의 문학적인 작품"이라고 썼다. 이런 평가는 보들레르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고통과 환멸의 외양 뒤에 감춰진 '정신적인 거대함'을 만나 보자.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