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튀어 오른다. 가을걷이가 끝나 뒤엎인 논거죽이, 수로의 갈대숲이, 잔잔한 호수면이 신들린 듯 일제히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 같다. 낙조에 붉게 물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한다. 쏟아져 내리는 소리에 귀가 따갑다. 몸이 후끈 달아 오른다. 아이들도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치켜 들고 껑충껑충 뛴다. 기대는 했지만 그렇게 텅 빈 공간에서, 그렇게 꽉 찬 감동의 자연을 마주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서산 천수만에서의 하루, 철새들과 함께 한 오후. 천수만 탐조나들이는 간월도 진입로 반대편에서 시작됐다. 서산간척지 A지구 간월호쪽이다. 4천7백여만평의 농지, 1천3백여만평의 담수호로 형성된 거대한 땅의 한쪽이다. 함께 한 천수만조류보호회 한종현 사무국장의 이야기. "이곳에선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의 철새를 관찰할수 있어요. 1백20여종을 헤아립니다. 현재 개체수는 30여만마리. 가창오리 20만, 흰뺨검정오리 4만, 청둥오리 3만, 큰기러기가 2만마리 등으로 추정됩니다" 노랑부리저어새, 뒷부리장다리물떼새, 고니는 물론 맹금류도 각기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달 말쯤 개체수가 60여만마리로 정점을 이룬다. 깊이가 다른 담수호, 낟알이 많은 농경지, 방조제 밖 갯벌 등 철새들의 겨울나기터전으로 이만큼 조건이 좋은 데가 없기 때문이란 설명. 자동차엔진소리에 놀랐는지 수로의 갈대숲에 쉬고 있던 쇠오리, 청둥오리가 파도타기 응원하듯 줄줄이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 앉는다. 간월호 서쪽의 첫번째 관측포인트. 호수 가운데 무리져 앉아 있는 철새들이 보일듯 말듯하다. 스코프로 보니 노랑부리저어새가 긴 부리를 물속에 박고 머리를 휘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다. 동화속에서나 접했던 덩치 큰 백조(고니)의 눈매가 유순하다. 날카로운 앞발로 먹잇감을 움켜잡은 항라머리독수리도 보인다. "중국에 사는 맹금류인데 성조(어미새)의 세력권에서 밀려나 이곳까지 오게된 유조(어린새)입니다. 올해 처음 보는군요"(천수만조류보호회 전기형씨) 반대편에는 잿빛개구리매가 낮게 떠 있다. V자로 날개를 편 채 소리없이 지상의 먹잇감을 노리는 맹금류의 하나. 간월호를 끼고 도는 농로는 좁고 거칠지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연이어 나타나는 청다리도요, 댕기물떼새 등과 큰기러기 무리의 장관이 새로움을 더한다. 정미소쪽 관측포인트. 붉은 해가 안면도쪽 뭍의 실루엣 위에 걸쳐 있는 시간. 새벽녘과 해질녘 하루 두차례만 볼수 있다는 가창오리의 군무를 마음 졸이며 기다린다. 허공을 가득 채우는 소리, 이어 가창오리떼가 뚜렷한 윤곽을 그리며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순식간에 아래를 향하다 솟아오르는 등 곡예하는 모습이 숨이 막힐 지경. 해가 떨어지고, 가슴 후련한 오늘 탐조여행은 여기서 끝. 한 국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가슴에 새긴다. "천수만은 101보충대 같은 곳입니다. 철새들이 훈련받고 힘을 키운 뒤 자대배치 받는 거점격이죠. 이곳이 사라지면 얘(철새)들은 빨치산이 돼 흩어집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스스로 보호하려는 생각이 앞서야 만들어갈수 있습니다" 서산=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