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천재화가 일생 담은 「폴락」

100여년 전 천재화가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 술을 벗삼아 한국화의 전형을 완성한 지 반세기 후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이 술과 싸워가며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폴록은 에드 해리스 감독ㆍ주연의 「폴락」을 통해 스크린에서 부활했고 장승업은 거장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醉畵仙)」으로 되살아날 준비를 갖추고 있다.

11월 10일 국내 관객과 만나는 「폴락」은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개척한 전위화가 잭슨 폴록의 전기영화.

미술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어서 정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주지만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역동적인 그의 작업장면은 스크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와 함께 그의 예술혼을 위협한 술과, 그에게 영감을 준 여인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고 있던 무명화가 잭슨 폴록(에드 해리스)에게 여류화가 리 크레이즈너(마샤 게이 하든)가 찾아와 작업실을 둘러본다.

첫눈에 천재성을 감지한 리는 잭슨의 영원한 후원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잭슨은 리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개인전 파티에서 벽난로에 오줌을 누는 추태를 벌이는가 하면 며칠동안 길거리를 헤매며 걸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자신의 작품활동을 포기한 채 끊임없이 잭슨을 작품에 몰두하도록 부추기고, 그의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미국과 유럽 화단의 문을 두드렸다.

집착에 가까운 리의 행동은 잭슨의 작품세계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줬지만 오히려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잭슨은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고 새로운 여인 루스 클리그맨(제니퍼 코넬리)에게 빠져든다.

리가 떠나간 뒤 잭슨은 그가 유일한 사랑임을 깨닫지만 너무 늦었음을 알고 자동차로 죽음의 질주를 펼친다.

이 영화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눈높이를 달리해 바라봐야 한다.

한달에 한번쯤 전시회를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강렬한 색채와 추상적 이미지의 작품들을 화면으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만하다.

폴록의 라이벌이었던 윌렘 드 쿠닝(발 킬머)과 미술관 운영자 페기 구겐하임, 미술평론가 클리멘트 그린버그 등 유명 미술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년에 한번 미술관을 갈까말까하는 사람은 드라마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읽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미술계의 제임스 딘(그 역시 잭슨 폴록보다 한해 전 자동차사고로 숨졌다)'으로 불릴 만큼 그의 반항적 기질과 비극적 운명은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

10년 동안 그림공부에 몰두하며 폴록에 빠져 살았던 에드 해리스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마샤 게이 하든의 신들린 듯한 연기도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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