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이자 토속적 서정시인으로 북한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 재평가를 받아 온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은 납북 또는 월북했거나 해방이후 북한에 그대로 남은 문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이름을 딴 백석문학상이 몇해전에 제정된 것도 그의 탁월한 재능과 작품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금년에는 김영무(金榮茂.57.서울대 영문과 교수)씨가 선정됐다. 1912년 7월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한 백석은 일제시대 김소월, 정지용과 같은 수준의 천재시인으로 통했으나 분단 이후 북한에서의 행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문학사에도 그의 이름은 올라있지 않은데 다만 북한정권 초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59년 이전까지 평양 동대원구역에 살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번역창작실'에서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했던 것은 확인되고 있다. 솔로호프의 등이 이 시절 백석이 번역한 러시아 문학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뒤부터 그의 행적이 두가지 설로 전해지고 있는데 첫번째는 "숙청을 당해서 고향(평북 정주)근처의 협동농장에서 일하다가 1963년 사망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압록강 인근 양강도 삼수군에서 농사 일을 하며 문학도를 양성하다 95년 1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두번째 설은 90년대 중반부터 백석의 행적을 쫓아온 소설가 송 준씨가 백석의 미망인 이윤희씨(생존시 76세)와 장남 화제씨가 지난 99년 2월 중국 조선족을 통해 보내온 서신과 백석의 말년 사진 2점을 최근 공개하면서 제기된 것이다. 미망인 이씨는 이 서신에서 "남편과 결혼한 이후 평양에서 살다가 59년 삼수 관평리로 옮겨 현재까지 살고 있으며 남편은 95년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적었다. 이씨는 백석이 '붉은편지 사건'으로 삼수군의 협동농장으로 내려왔다고 전했으나 이 사건이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발생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북한 문학사 또는 정치사에서도 '붉은편지 사건'에 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진상을 알 길이 현재로는 없다. (서울=연합뉴스) 최척호기자 chchoi0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