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를 통합해 탄생시킨 서울공연예술제를 서울을 대표하는 진정한 국제 수준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총산하 연극협회와 무용협회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있다. 이같은 주장은 특히 연극부문 운영위원장을 맡아 축제를 준비해 왔던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최종원 한국연극협회 이사장과의 이견으로 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품 선정 등 사실상 예술감독 역할을 해 왔던 정 교수의 중도하차로 당장 예술제의 일관성 유지가 어렵게 됐으며 내년 5월로 닥쳐온 차기 행사 준비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기 때문. 또 정 교수와 최 이사장 사이의 갈등이 예술제의 기본적인 성격에 관련된 문제여서 축제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도 예술제에 대한 범공연예술계의 논의가 필요하게 됐다. 정 교수와 최 이사장은 각각 예술제에 축제 성격을 강화, 관객이 찾는 행사로 만들겠다는 의견과 애초 서울연극제의 기본 취지였던 창작극 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갈등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제와 무용제의 통합에 대해서는 논의 초기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곳곳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공연계는 기본적으로 이같은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전반적으로 침체된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계는 현재 예술제의 운영이나 진행을 살펴볼 때 내년 월드컵을 계기로 20억-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서울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공연축제로 만들어 가겠다는 축제 통합의 기본 발상이 제대로 살려질지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축제에 당연히 요구되는 중장기 계획과 뚜렷한 비전이 없는 운영이 이 행사가 단순히 내년 월드컵을 겨냥한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연극협회와 무용협회가 각각 연극-무용계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거나, 혹은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측면이 맞물려 있다. 우선 연극계의 경우 3년에 한 번씩 협회 이사장이 바뀔 때마다 서울연극제에 참여하는 인력이나 행사의 성격이 변질돼 왔다는 사실이 지적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서울연극제에 초청됐던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여인」. 이 작품은 당초 서울연극제 공연 이후 올해 홍콩 페스티벌 참가가 추진됐었으나 그간 협회 집행부가 바뀌면서 이같은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 또 과거 집행부 시절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씨 1인이 예술감독을 맡았던 방식이 현 집행부로 넘어오면서 정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집단운영 체제로 바뀌었다. 아울러 과거 서울연극제를 꾸렸던 인력이 모두 이번 서울공연예술제 준비과정에서 배제되면서 그간 쌓아 온 노하우는 물론 추진중이던 각종 프로그램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게다가 최 이사장은 거액의 초청료를 지불해 가며 외국 작품을 가져오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국내 창작극 위주로 꾸려 가겠다는 방침이어서 연극분야만을 놓고 보더라도 축제가 전혀 일관성없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용계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서울무용제를 개최해 온 무용협회가 무용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무용계 내외에서 높은 예술성과 기량을 평가받는 안무가.무용수들 가운데 협회 회원은 많지 않으며 평론가들도 대부분 협회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또한 무용협회의 그간 활동상과 평소 능력으로 보아 국제수준의 대형 축제를 치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아울러 현재 축제를 진행하는 부문별 운영위원회가 두 협회 이사장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에 종속된 형태여서 축제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만큼 독립된 축제사무국 설립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점도 협회와 축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대학로의 한 공연기획자는 "지금 상태라면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서울공연예술제도 기본방향은 물론 프로그램 성격, 운영방식 등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연극과 무용이 서로 무관하게 짝짝이로 굴러갈 것"이라며 "협회와는 독립적으로 반영구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별도의 축제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획자는 "무엇보다 연극-무용계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연극-무용제 통합은 관객저변 확대와 더 큰 예산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그러나 서울공연예술제가 연극협회나 무용협회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좁게는 연극계와 무용계 전체, 넓게는 서울 시민의 문화향수권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중장기적 계획 아래 내실 있는 축제를 위해 협회와는 분리된 방향으로 축제를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