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의 진원지인 베트남에서 저명한 학자가 베트남인들이 한국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에 대해 장문의 기고를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네스코 교육문화 담당자로 일해오기도 한 응웬청릭씨는 최근 베트남의 일간 티엔퐁(선구자)지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베트남인들의 한국드라마 신드롬은 양국관계를 통해 볼 때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티엔퐁지에 실린 릭씨의 기고문 내용. 『베트남에서는 지난 2년간 거의 매주 한국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만약 하노이에 사는 한가한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개 TV채널(베트남 TV 3개 채널과 하노이TV, 하터이TV)을 돌려보고 극장에 가면 하루종일 한국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호치민과 다른 주요도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며 베트남인들에게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은 거의 일상적인 생활습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99년도에 베트남에서 상영된 한국드라마는 45편이며 지난해는 60편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더욱 그 수가 늘고 있다. 베트남인들이 이처럼 한국드라마에 끌리는 것은 베트남인들의 일상생활 속에도 흔히 있는 일들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은 할머니, 아주머니, 농촌과 도시 총각 할것 없이 "한국드라마는 모두 재미있으며 배우와 배경 등 모든 것이 예쁘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심각한 삼각관계와 고약한 시어머니들을 보면서 즐겁게 논쟁을 벌이고, 불행한 운명 앞에서 가슴 아픈사랑을 나눌 때는 많은 여성들이 깊은 감동을 받는다. 여주인공의 불행이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을동화'가 방영됐을 때에는 이 드라마를 본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기 일처럼 눈물을 흘렸다. 또 한국드라마를 통해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예쁜 옷과 헤어스타일, 화장, 머리염색 등에 열광하고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국드라마의 또 다른 진수는 가풍중시, 경로효친, 장유유서의 전통을 통해 가족들간의 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또 여자들 간의 질투, 상인들간의 다툼, 회사와 가족내 갈등 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심도있게 표현되고 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인들은 간접적으로 생동하는 인간관계를 느끼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패싸움을 하거나 실연의 아픔을 술로 달래고 여자들이 술에 취해 자살하며 사장이 고용인을, 교사가 학생을 구타하는 장면 등은 베트남인들의 정서에 부합되지 않아 언론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이밖에 어떤 한국드라마는 내용도 없이 상품, 특히 화장품 광고를 위해 제작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유행을 무조건 따르게 하는 부작용을 주기도 한다.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에 공감이 느껴지지 않고 폭력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드라마는 강한 흡인력을 갖는다. 한 친구는 한국드라마에 대해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여성들이 부엌일을 하면서도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 심각한 고민없이 볼 수 있는 것이 한국드라마의 장점인 것이다. 한국드라마는 또 삶에 대한 충고, 가족내에서의 처신, 자립적인 생활, 유교적인 굴레로부터의 해방 등을 통해 즐거움을 주면서도 출세지향적인 성향이나 돈에 대한 집착, 인간의 도리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하는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함으로써 베트남인들의 가슴을 파고 든다. 이는 한국과 베트남이 모두 오래 전부터 중국문화를 도입한 국가들로서 문화적 유사성이 많이 남아 있으며 국민들의 정서, 생활습관 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드라마가 일상생활과 관련된 평범한 사건들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베트남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이 마치 드라마속에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외세의 침략으로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한국드라마는 꾸준히 동양적 특색을 잃지 않고 전통적인 삶을 통한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짐으로써 시청자들을 드라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또 다른 면모는 예술과 선진화된 기술의 결합을 통해 생동적인 표정을 만들어내고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모습을 그려내는데 있다. 풍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잘 생기고 문제의 해결에는 미덕이 있으며 이야기의 결말에는 즐거움이 있다. 이는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2천년이 넘도록 외세의 영향을 받아왔음에도 한국문화는 여전히 우리 고유의 민족적 특색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베트남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편지' '첫사랑' '의가형제' '느낌' '신데렐라' '토마토', 가장 최근에 방영된 '불꽃' 등을 볼 때 한국드라마는 이제 베트남에서 한 문화요소로서 자리를 잡았고 세계화를 추진求?베트남인들에게 주의깊게 볼만한 문화적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하노이=연합뉴스) 권쾌현특파원 khk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