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9일,이승룡 LG애드 상무는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신장암으로 투병중인 친구가 병상에서 보낸 편지였다. 어느 낚시꾼에게 잡힌 용왕의 아들 물고기가 자기를 놓아주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소원을 한참 생각하는 동안 물고기는 그만 말라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끝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지금 당장 말할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는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친구의 메일은 날마다 날아왔고 글의 내용에 감동한 동료 선후배 친구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올 여름 편지는 끊겼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에 짧은 느낌을 붙여 벗들에게 보내던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 안타까운 사연이 깃든 책 "파란 파일 속 이야기"(양인명 지음,물푸레,8천5백원)이 출간됐다. 촉망받는 내과의사이자 교수(경희대),견실한 가장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남자. 항암치료로 정신이 가물거리는 동안에도 그는 따뜻한 이야기로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혈액투석을 다섯번이나 받은 날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가난뱅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 뒤 그는 갔지만 친구들은 그의 영혼을 책으로 묶었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례적으로 추천사를 썼다. 책 42쪽에 나오는 얘기. 어떤 주부가 남편 수입이 적어 구멍가게를 냈다. 정직하게 물건을 팔자 손님이 많아졌고 트럭까지 동원하게 됐다. 어느날 퇴근하던 남편이 "다른 가게엔 손님이 없대.건너편 집은 곧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는군" 했다. 이 말을 듣고 부인은 주문량을 줄이고 왠만하면 "그건 건너편 가게에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남긴 작가 미우라 아야꼬다. 이 얘기 끝에는 삶의 여유와 나를 돌아볼 줄 알자는 "감상"이 덧붙여져 있다. 링컨 대통령이 호두를 놓고 다투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지금 세계대전을 보고 있는 중일세"라고 대답하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그가 책에서 발췌한 2백개의 감동스토리는 많은 수신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아내가 대신 쓴 머리글과 딸의 편지도 애틋하다. 그의 뜻대로 책의 수익금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쓰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