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또 문학을 했기에 다행이었다고" 11일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3백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가진 정년퇴임 기념 강연에서 김윤식(65)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의 말끝이 가늘게 떨렸다. 33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는 감회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학과장직을 맡았던 몇년을 빼고는 다른 보직 없이 오로지 소설을 읽고 연구하고 글쓰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동안 그가 집필한 평론집과 문학연구서만 1백여권에 달한다. 한국문학사에 "근대성"의 개념을 상정해 한국 현대문학 연구를 한단계 성숙시킨 것도 그의 공로다. 그는 이날 "갈 수 있고,가야할 길,가버린 길"이란 제하의 강연에서 "외로움과 누님의 교과서가 나를 시와 소설에 빠지도록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소년기 강가 포플러 숲에서 외롭게 자라며 문학에의 동경을 키웠고 누님이 읽던 일본 교과서에 스며있던 물질경시와 문화숭배사상이 문학에의 이념을 강화하는데 일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윤달에 태어났기에 "잉여 부분"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고비나 의외의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이건 단지 잉여부분이라고 가만히 되뇌었습니다" 그는 문학속에 인류의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천착해 온 근대문학도 인간이성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는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로 요약된다. 일제 강점기의 모든 저항문학,60,70년대의 분단 문학,80년대의 노동문학 등이 그것이다. 그는 "요즘의 문학은 "인간은 벌레다"는 명제로 정리된다"고 규정했다. 지난 94년 윤대녕의 소설 "은어낚시 통신"에 나타난 논리의 세계를 초월하는 생명의 모천회귀가 그에게 힌트를 줬다. 인간도 모든 생물들처럼 섬세하고 난해하며 아득한 존재물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일생을 학문 연구자와 문학 비평가로 살아왔지만 두 영역에 갖히지 않는 "표현자"를 꿈꿔왔다고 말했다. 남의 작품을 관리하는 "묘지기 신세"가 아니라 "머나먼 울림과 선연한 헛것"을 제시할 수 있는 평론의 경지를 추구해왔다는 설명이다. 고별강연 자리에는 소설가 박완서 현기영 김연수씨,시인 이문재씨 등 문인들도 참석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