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아날학파는 사료의 정확성에 집착해 역사학의 폭과 깊이를 축소한 랑케사학을 거부하고 전체와 종합으로서의 역사를 표방,역사연구 방법론의 물꼬를 바꿨다.


아날사학은 후에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에 의해 '모던'한 것으로 비판받는 위치에 이르렀지만 창시자인 뤼시엥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등 1세대와 페르낭 브로델 등 2세대, 조르주 뒤비와 앙드레 뷔르기에르 등 3세대에서 역사연구의 방법과 경향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날학파를 특히 유명하게 만든 브로델은 역사의 시간을 사회적 층위에 따라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의 시간(장기지속의 시간, 사회적 시간, 사건사적 시간)으로 나눠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으로서의 역사학'을 조망했다.


그러나 뷔르기에르 등 아날 3세대는 브로델이 역점을 둔 '구조'에 의해서 배제된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인류학의 성과를 역사학에 끌어들여 역사 속의 인간과 사건의 흔적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1986년 출간된 「가족의 역사」는 이같은 '인류학적 역사'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아날의 젊은 연구자들이 거둔 연구 성과물이다. 전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뷔르기에르 등 서른 명의 학자들이 각자의 학문영역에서 집필에 가담했다.


고대사회와 유럽 이외 지역의 고대 시기를 다룬 제1권은 오랜 세월 동안 이뤄진 가족의 발전을 담았고, 유럽의 중세와 비유럽권의 문명을 다룬 제2권은 중세시기에 대한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교차적인 시각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제3권은 종교적ㆍ정치적ㆍ경제적 혹은 사회적 측면에서의 근대의 충격과 유럽적 가족 유형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류학의 비조(鼻祖)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쓴 제1권이 최근 도서출판 이학사에 의해 번역.소개됐으며, 제2,3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레비-스토로스는 "가족이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면 가족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면서 "전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가족은 항상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타협한다"고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472쪽. 2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