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 데 스님은 아직 합장한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을 지키고 있는 조계종 전계대화상 범룡(梵龍.87)스님.


전계대화상이란 승려들에게 계(戒)를 내리는 최고 책임자로 수행자의 표상이다.


평북 맹산에서 태어나 1936년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했으니 법랍 65년의 원로중 원로인데도 아랫 사람 대하는 모습이 더없이 깎듯하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내 발로 걸어다닐만 합니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공부하셨다면서요.


"당시 유점사는 염불방,선방,강당을 갖추고 있었는데 수월당이 강원,연화사 큰 방이 염불방이었지요.


강원에는 학인이 20여명 있었어요.


그땐 모든 게 부족해서 공부하기 힘들었지요.


특히 먹을 게 부족해서 젊은 사람들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젊을 때 금강산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며 수행한 일화가 유명하던데요.


"스물여덟살 때였어요.


옛 어른들은 선지식을 찾아갈 때 일보일배(一步一拜)하며 수행했는데 그렇게까진 못해도 걸어는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유점사를 떠나 서울을 거쳐 범어사까지 걸어갔지요.


한달쯤 걸려 범어사에 도착해 선방에 앉으니 다리도 아프지 않고 며칠간 자지 않아도 잠이 오지 않는 성성(惺惺)한 경지가 계속됐지요"



-평생을 참선수행해 오셨는데,수행이란 무엇이며 마음이란 또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자기 마음과 경쟁하는 게 수행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찰나 간에 수천,수만리를 왔다갔다하고 잡으려 하면 소리도 없이 내뺍니다.


이 마음을 붙잡아 가라앉히는 게 수행이지요.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참선할 때 화두는 어떤 걸 드셨나요.


"당나라 때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지요.


한암 스님한테 화두를 하나 가르쳐 달라니까 이 '무'자 화두를 주시더군요.


부득작진무지무(不得作眞無之無) 부득작유무지무(不得作有無之無)라 했습니다.


'무'라고 하니까 아무 것도 없다는 '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있다 없다 하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참선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뤘습니까.


"오래 참선해도 견성은 잘 안됩디다.


다만 어느 해던가,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이룬 성도절을 앞두고 일주일간 용맹정진(잠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하다가 삼매에는 들었지요.


삼매에 들면 몸도 마음도 눈동자까지도 움직이지 않아요.


보통 때는 내 눈이 대상을 보지만 삼매에 들면 눈이 면경(面鏡·거울)이라,사물이 눈동자에 와서 비쳐요.


삼매에 들어보니 불법(佛法)이 좋은 줄 알겠더군요"


노장은 견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오도송(悟道誦)도 없다고 했다.


일부러 짓는 오도송이 뭐 필요하냐는 말이다.


삼매의 경지를 설명하는 노장의 모습이 맑고 투명하다.



-스님은 화엄경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참선에 방해되지 않았나요.


"참선할 땐 경전을 안보는 게 좋아요.


나도 참선을 하던 중 화엄경의 어려운 구절에 걸려 마음이 화두로 갔다가 화엄경으로 갔다가 하는 통에 방해가 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스님이라면 기본적으로 경전을 공부해야지요"



-깨달은 사람도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까.


"무릇 얻기보다 지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깨달은 걸 잘 간수하지 않으면 도로 다 없어지고 맙니다.


깨달은 뒤에도 정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스님들에 계를 주는 총책임자인 전계대화상을 맡고 계신데,계율이란 무엇입니까.


"질서를 잡기 위한 방편이지요.


부처님은 '이계위사(以戒爲師)',즉 '계로써 스승을 삼으라'고 하셨어요.


자장율사는 '영위지계일일생(寧爲持戒一日生)이언정 불위파계백년생(不爲破戒百年生)'이라,계를 지키며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를 하며 백년을 살지는 않겠다고 했지요.


계율 지키는 걸 생활화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도 청정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요.


"화엄경에 선용기심(善用其心·마음을 잘 쓰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마음을 잘 쓰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세상도 평화로워집니다.


서산대사가 남긴 시 가운데 '객이 주인에게 꿈얘기를 하니 주인이 객한테 꿈얘기를 하네.이제 꿈얘기를 하는 두 객도 역시 꿈속의 객이네(客說夢主人 主人說夢客 今說二夢客 亦是夢中客)'라는 게 있어요.


사람들은 잠자면서 꾸는 것만 꿈인줄 알고 이 세상이 꿈인줄은 몰라요.


마음을 맑게 하고 사람 간에는 물론 세상 만물에도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마당으로 자리를 옮긴 노장은 비로암을 중창한 얘기며 채마밭 일군 얘기까지 자상히 들려줬다.


평상에 앉아 한담을 나누는 동안 산비둘기 몇 마리가 절간 마당에 내려앉았다.


노장의 선용기심이 산비둘기에도 닿은 듯했다.


대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