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한지 올해로 65년이 지났다. 1930~1940년대 장돌뱅이들이 넘나들던 강원도 봉평과 장평, 대화간 팔십리 산길은 이제 차량이 부산하게 오가는 국도로 변했다. 왁자하던 장날의 풍경도 예전 같지 않고 저잣거리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대신 들어선 카페들과 음식점들은 형형색색 간판을 내걸고 부산하게 손님 끌기에 나선다. 하지만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을 찾은 외지인들의 표정은 마냥 밝기만 하다. 평창의 따사한 초가을이 초입에 들어설 때부터 넉넉함을 안겨주었다. 하긴, 애써 30년대의 풍경을 쫓을 필요는 없다. 달빛의 애잔함을 간직한 메밀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폈고 사람들의 구수한 말투도 예나 지금이나 여행자들을 반긴다. 메밀꽃 필 무렵인 8월말 평창군에서는 다시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3회째다. 31일 시작돼 9월3일까지 장터와 가산공원, 무이예술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축제기간동안 봉평장터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주막에선 메밀요리 경연대회와 각종 먹거리 코너가 열리고 토산품과 산채, 야생화 등이 판매된다. 장터 주변에선 민속놀이와 국악공연 등이 축제의 분위기를 돋우게 되며 영화도 상영된다. 가산공원 등지에선 이효석의 추모행사가 개최된다. 어린이 백일장과 문학의 밤이 열리고 이효석 문학상 시상식과 유품,자료 전시가 이어진다. 무이예술관에서는 회화와 도예 작품전시회가 열린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무이예술관은 운동장에 자리한 조각공원과 교실에 마련된 전시실이 이채롭다. 보름 밤에는 효석문화마을을 중심으로 작품 배경지 탐방행사가 열린다. 장돌뱅이들이 지친 여정을 풀었던 "충주집터"며 허생원이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넜던 장평냇가, 성서방네 처녀와 정분을 나눴던 "물레방앗간" 등을 따라 걷고 산허리에 펼쳐진 메밀밭의 전경도 만끽해 볼 수 있다. 효석문화제를 둘러본 후에는 "흥정계곡"과 "한국자생식물원"을 들러보자. 흥정계곡은 봉평에서 6번국도를 타고 횡성 방향으로 1km 정도 가다가 우회전에서 산길을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 흥정산 자락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시원함을 더해준다. 흥정계곡 안쪽에 위치한 "허브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입구를 지나면 페파민트 로즈마리 라벤다 등 1백여종의 허브식물들이 향을 뿜어낸다. 테라스에서 즐기는 허브차와 샐러드의 맛도 이색적이다. 한국자생식물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국내 토종식물만을 모아놓았다. 총 1천여종에 이른다. 온실에서 분재와 약용식물을 둘러보고 외부전시장으로 나서면 오대산 자락을 수놓은 야생화의 바다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