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48) 시인의 신작 에세이 '부드러움의 힘'(생각의 나무)은 오랜 존재탐구 작업에 쉼표를 찍은 지적 사유의 성과물이다. 현직 목사인 시인은 아찔한 속도의 시대,부유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거나 존재의 근원에 맞닿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의 예시는 문학과 종교 철학의 어우러짐으로,또 예수와 석가 노자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저자는 부드러움 침묵 여백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해 우화형식의 글에 이어 사색의 글,깔끔한 잠언시 등을 담았다. 부드러움편에서 그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부드러운 삶이란 표면의 힘만 믿는 게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하고 때때로 끼여드는 불행도 넉넉히 즐기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또 제대로 조율된 악기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고 물처럼 상대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시키는 삶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침묵의 위대함'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침묵이다. 진리는 언표를 뛰어넘는 존재며 침묵과 고요에 이르렀을 때 영적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늘 집단의 편에 서도록 요구하는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남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결단을 내렸을 때 참된 나와 대면하게 된다. 여백의 소중함에 대한 그의 잠언도 두고두고 기억할 만하다. 여백은 삶의 빈칸이지만 속도의 시대에선 신만큼이나 접하기 어렵다고 그는 주장한다. 마음이 진정으로 내적 고요에 이를 때 존재의 여백은 만들어지며 그 여백의 자리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의 탐구가 시작된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겨울 눈밭에서 사뿐 날아내린 참새의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볼 수 있듯 여백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