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 한국은행 총재 >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생각하는 동물로서 끊임없이 사물의 존재,운동법칙 그리고 변화를 알고자 한다. 또한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파악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존재,운동,변화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실효성있고 확실한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필자는 인간의 지식과 행위에 관한 인식론에 깊은 관심을 지녀왔으나 이 점과 관련해서 오랫동안 좁게는 자신의 지적 한계,넓게는 인간능력의 근본적인 한계를 절감해 왔다. 통화신용정책 등의 성공가능성을 높이고 진리와 인식의 정확성에 한 발자국 더 접근해야 한다는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당초 설정했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통감한다. 옥스퍼드대학 철학교수 T.윌리엄슨(Timothy Williamson)이 쓴 "지식과 그 한계(Knowledge and its Limits)"(Oxford University Press,2001)는 이러한 갈증의 일부를 충족시켜 준다. 서장을 포함해서 제1장 심리상태,제 12장 구조적 불가지성 등 총 13장과 부록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believing something)"과 "그것을 안다는 것(knowing it)"은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믿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제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믿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에 대한 어떤 믿음을 지니기에 앞서서 존재본질,운동법칙,변화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적 수준이 매우 높더라도 불가지성(不可知性),즉 앎에 대한 회의만이라도 지녀야 한다. 다만 절대 회의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앎(知)이 철학적 인식의 출발점이고 앎 또는 앎의 결합형태가 믿음 또는 신념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증을 통해 앎을 획득하기보다는 검증을 필요로 하는 단순한 지식의 편린 또는 재료를 지니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자기가 어떤 것을 아는 것으로 치부하여 지식화하는 경우가 많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심리상태에 불과한데도 이를 지식화하고 신념화함으로써 허위의식으로 정착되는 경우도 흔하다. 최소한 신념.확신 등 특정의 정신상태만으로 "우리가 안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식과 행위(정책)야말로 철학과 현실관계의 중심과제이다. 행위는 정신상태에 따라 현실(상황)에 부합하고 지식은 현실에 따라 정신에 부합하는 현상이다. 때문에 현실이 정신에 부합하지 못하면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개인 또는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반대로 정신이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면 신념이 흔들린다. 따라서 욕구는 행위로 현실화되기를 바라며 신념은 지식으로 환원.발전되기를 열망한다. 욕구의 정착점은 행위.실현이고 신념의 최종점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시대에도 아직은 철학이 설 자리가 있고,어느 시대건 사색과 행동은 필요하다. 윌리엄슨은 오늘을 사는 우리 지성인에게 특히 이 점을 일깨우며 현대문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다만 상당 부문이 수학지식과 깊은 사색 없이는 읽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