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60도까지 치솟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달러를 캐고 영하 40도의 시베리아 벌판에 가스관을 놓은 현대.반도체와 텔레비전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수출해 연간 수백억 달러씩 벌어들인 삼성. "카리스마 VS 카리스마 이병철.정주영"(홍하상 지음,한경BP,9천원)은 격동기의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두 거인의 얘기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우뚝선 이들의 추진력은 어디서 나왔는지,황무지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힘의 뿌리는 무엇인지를 "카리스마"라는 프리즘으로 재조명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작가답게 두 주인공의 숨은 일화까지 추적해 흥미로운 리더십 모델을 빚어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었다는 것.구성원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사람관리에도 탁월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목표를 달성했으며 사업에 실패할 때에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신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였다. 그것이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을 움직인 동인이었고 리더십의 원천이었다.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점도 서로 닮았다. 그러나 기업 경영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정주영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었지만 이병철은 차분하고 이지적이었다. 현대가 건설과 조선 중공업 자동차 등 중후장대형 산업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삼성은 반도체 전자 합섬 제당 등 경박단소형 산업에 집중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쌀가게를 시작한 정주영.그는 밀림과 사막을 뛰어다니며 악조건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준 "용장"이었다. 술은 주로 막걸리집에서 마시고 순두부와 김치를 즐긴 토종형.한여름에도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견디고 구두 한켤레를 22년이나 신고 다녔던 "부유한 노동자"였다. 천석꾼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나 정미소로 사업을 시작한 이병철.그는 냉철하고 빈틈없는 조직관리로 내실 위주의 경영에 초점을 맞춘 "지장"이었다. 고급 요리를 즐기고 도자기와 고미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명품 골프채를 수백개나 수집했던 "철저한 노력가"였다. 이들의 카리스마는 용기와 실천력,장인정신과 일등주의로 이어졌고 부하직원들에게 그대로 전수돼 기업문화가 됐다. 지난 50년간 자전거 한 대 만들지 못하던 불모의 땅에서 세계를 상대로 기업을 일으킨 두 거인.경기불황과 증시침체로 온 나라가 휘청거리는 지금,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책갈피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와 묻는다. "해 보기나 했어?"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