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44)씨가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또 하나의 장편 "황태자비 납치사건"(해냄.2권)을 냈다. 21세기에 벌어진 일본 왕세자비의 피납사건을 소재로 19세기말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진상을 파헤치는 역사추리소설이다. 일본 왕세자빈 '마사코'의 실명을 그대로 도입한데다 명성황후가 낭인들에 의해 살해된 후 시간(屍姦)됐다는 충격적인 '가설'을 뼈대로 삼고 있어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대치 중인 한·일 두 나라 독서계에 논란이 예상된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가공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한국인의 비겁함과 냄비근성,일본인의 잔학상과 몰윤리성을 동시에 질타한다. 소설은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교과서 왜곡을 음모하고 이것이 일본인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최근의 상황을 기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즈음 가부키를 관람하던 왕세자빈 마사코가 괴한들에게 납치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고 민완형사 다나카가 진상을 하나씩 풀어간다. 납치범은 두명의 한국인. 1895년 10월8일 새벽 경복궁에서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 있었던 조선인 후예들이다. 왕실 경호의 직분을 버리고 낭인들의 위협을 피해 줄행랑쳤던 궁궐 경비병과 민비 암살을 막기 위해 상경했다가 그 경비병에게 참살된 농부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일본 외무성이 은폐하고 있는 한성공사관발 4백35호 문서 전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을미사변 당시 조선의 내부 고문관인 이시즈카 에조가 작성한 이 문서는 낭인들이 민비를 시간한 뒤 '일본제국만세'를 불렀다는 '오욕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백6년간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존재 자체를 부정해 왔다. 그러나 다큐작가 스노다 후사코 여사는 이 문건의 실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지난 90년대 초 저서 '민비암살'에서 문서의 실체를 확인하고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낭인들이)하였다'고 썼다. 김씨는 여러가지 경로로 취재해 보니 "그 괴로운 행위는 바로 '시간'이었고 이 수치스러운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황후의 시신이 현장에서 불태워졌음을 확신케 됐다"고 집필동기를 설명했다. 소설은 납치사건과 함께 문서의 행방 추적,왕세자빈 처리를 둘러싼 두 한국인의 갈등,이들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암살 기도 등을 다루고 유네스코에서 왕세자빈의 문서내용에 대한 극적 증언으로 끝맺는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