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문자 채팅과 전화상의 채팅은 무엇이 다른가. 여러 차이점 가운데서도 인터넷 채팅은 전화 채팅에 비해 익명성이 더욱 보장된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전화나 인터넷이나 익명이긴 마찬가질 터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성문(聲紋)마저 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의 '강화된 익명성'은 우리 사회 어느 부분에 변화를 가하고 있을까. 현재로서 추정할 수 있는 답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집단 대 집단, 집단 대 개인, 개인 대 개인이 의사소통 매개체가 달라지면서 그 매개에 담는 내용뿐만 아니라 내용 변화에 따른 관계의 변화도 겪고 있다. 60년대 선진국에서 자동차의 대중화가 교외지역의 주택화와 아울러 도심공동화를 초래했고 TV가 직접민주주의의 몰락을 가져왔다면, 인터넷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에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 2명중 1명은 인터넷을 한다는 2001년 한국에서도 인터넷의 영향은 지대하다. 처음에는 동호회 사이트와 섹스 사이트가 '.co.kr'를 점거하더니, 벤처기업과 정부가 잇따라 '.com'과 'or.kr'의 꼬리표를 달고 사이버 공간 개척자 대열에 합류했고, 이제는 웬만한 명사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도 개인을 뜻하는 'pe.kr'에 집 한 채씩 마련하는 게 일반화되었다. 모두의 모두에 대한 익명성은 인터넷의 대중화 물결을 타고 집단화와 동시에 개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성향을 노정하기도 하는데, 최근 언론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네티즌들의 논쟁을 촉발시켰던 이문열씨의 인터넷 홈페이지(www.munyol.pe.kr)게시판이 원색적인 욕설과 비방으로 인해 잠정 폐쇄된 것은 그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은 그 각종 순기능이 인정받고 있는데다 역기능마저도 아직은 성급히 비판을 가할 단계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인해 더욱 강력한 메가톤급 폭풍 속으로 사용자들을 몰고갈 것임이 자명하다. 그러다 보니 네티즌들의 성향 파악이 정치에서부터 사회 경제 문화의 제분야에 걸쳐 상당히 중요한 일로 부상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분야에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새로 출간된 「인터넷 심리학」(에코 리브르刊.패트리샤 월리스 지음)은 아직 정체가 안개에 싸여 있는 인터넷의 사용자 성향과 심리상태를 파악해 보려 하고 있다. 책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기 정체성 문제에서부터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 물리적 거리와 공격적 행동의 함수관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포르노, 성 정체성 등 전반적 사항에 대해 언급한다. 메릴랜드대학 부설 지식정보경영연구소 소장이라는 저자의 직함이 말해 주듯 학문적이고 진지한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황상민 옮김. 408쪽. 1만6천500원. (서울=연합뉴스) 김형근 기자 happy@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