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846) 장군의 활동근거지였던 청해진 본영의 실체가 상당 부분 드러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조유전)가 지난 91년부터 8차례에 걸쳐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장도(長島)의 청해진 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다.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중국에서 귀국한 장보고가 왕에게 직접 중국해적 소탕을 청해 군사 1만명으로 설치한 군영.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청해진은 3만여평의 장도에 단단한 토성을 쌓고 해안에는 이중의 목책으로 방어와 접안시설을 갖춘 군사 및 무역기지였음이 확실시 된다. 성벽과 건물터,우물터,해안 방어용 목책과 접안시설,경계용 망루,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보이는 3만여점의 유물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장도의 청해진 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흙을 다져 쌓은 판축토성으로 섬 가장자리를 8백90m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대가 낮은 서남쪽에는 성 안에 또하나의 성벽을 쌓아 내·외성의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이 성벽의 남쪽 끝에서는 망루로 보이는 고대(高臺)의 흔적도 발굴됐다. 아울러 지대가 높은 성의 북쪽과 동쪽에는 성벽에서 돌출된 3곳의 치(雉·높은 성루)를 세워 사방을 경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3곳의 건물터와 우물,배수구와 함께 주름무늬병,청동그릇,당초문 암막새,편병,청동·철제기구 등 통일신라 때 유물 3만여점이 수습됐다. 서남쪽의 외성에서 발견된 깊이 6m의 우물터 바닥에서도 각종 토기류와 말재갈 조각,어망추,방추차 등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특히 직경이 1.5∼1.8m에 달하는 우물은 청해진 뿐만 아니라 장보고 선단의 주요 식수원이었을 것으로 연구소는 보고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해안에 두겹으로 둘러친 목책(원목렬)과 문터,'ㄷ'자 모양으로 돌을 쌓아올린 석축석렬유구다. 목책은 지름 35∼40㎝ 가량의 소나무와 참나무로 남쪽 해안을 둘러친 3백31m의 안쪽 원목렬과 이와 7∼8m간격으로 나란히 해수면 아래에 설치한 바깥 원목렬 등 두 겹이다. 연구소측은 이 원목렬이 청해진으로 드나드는 배의 접안 및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는 돌과 흙으로 쌓은 가로 21m,세로 22m 규모의 해안 구조물로 해안출입통제 및 접안시설이었을 것으로 연구소는 평가했다. 문화재연구소 윤근일 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마무리되는 장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수많은 유구와 유물들은 청해진의 실체를 규명하는 기초자료일 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표지유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