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성란(34)씨의 3번째 장편소설 '내 영화의 주인공'(작가정신) 은 제도권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을 그린 '로드무비' 형식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학교라는 '감옥'에서 탈주한 여고생 3명과 한 선생의 동반여행기를 작가의 시선(카메라)이 따라가는 식으로 구성됐다. 감독은 하씨이며 주인공은 상숙과 재희,송미,그리고 수학교사 수혁이다. 첫 장면은 교장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훈시를 하는 도중 세 학생이 탈주를 감행하는 모습이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있는 열매',즉 착실한 학생이 될 것을 교장이 주문하고 있을 때 세 학생은 담장을 뛰어 넘는다. 이들은 체육교사의 호루라기 소리와 다른 학생들의 환호를 뒤로 한 채 대로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한다. 다음 장면은 다른 학교.교장으로부터 노란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지 말라며 경고를 받은 수혁은 학교를 그만둔다.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던 3명의 여고생은 우연히 수혁을 만나고,수혁의 승용차를 타고 부산 몰운대로 향한다. 여기까지 화면이 주로 풀샷과 롱샷 (등장인물과 배경 전체를 담은 장면)에 의존했지만 곧 주인공들 각자를 클로즈업해 탈주배경을 들춰낸다. '우등생'인 상숙은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탈주를 시도한 것으로 그려진다. '열등생' 재희는 영화감독이 돼 '꿈의 공장'을 짓고 싶었고,'오락부장' 송미는 단짝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긴 상처를 갖고 있다. 수혁은 재단의 전횡과 교장의 완고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네 사람은 여행 도중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를 향해 소통의 다리를 놓는다. 그러나 그들의 도주는 시종일관 불안하다. 각기 입장이 다른데다 그것들이 부딪치면서 불협화음을 낸다. 이들의 충동적 가출은 진정한 출가(出家)로 연결될 수 없고 순응과 일탈의 경계를 배회할 뿐이다. 구속과 규율로부터 벗어났지만 '다시 (제도권의 중심인) 학교로 돌아가고픈' 심정이다. 수혁이 정한 행선지인 부산 몰운대도 '착오'를 일으킨다. 수혁은 마음에 둔 약국집 처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산 몰운대에 왔지만 그녀는 강원도 몰운대에 있다. 두 사람은 전화기를 붙들고 '거기'없는 서로를 찾는다. 주인공들이 간직한 '일탈의 욕망'은 포개지지 않으며 한 곳으로 수렴되지도 않는다. 뛰어난 카메라워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설의 문체는 잘 다듬어져 있다. 문장을 '껌 씹듯이' 씹어봐도 단맛이 계속 우러난다. 하씨는 "제도권에 사는 누구도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며 "'내 영화의 주인공'은 인생에서 항상 조연밖에 할 수 없는 우리네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풀'이 당선돼 등단한 하씨는 장편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 등을 썼다. 글=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