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다 벗기고 입을 수건으로 막았다. 담뱃불로 얼굴과 몸을 지지고 볼펜으로 허벅지를 찔렀다. 혁대와 주먹으로 때려 이빨이 부서졌다. 틀니마저 바스러졌다" 끝도 시작도 없고 까닭도 없이 남편으로부터 가해지는 무수한 폭력에 몸서리쳐온 여성들이 육성으로 쏟아낸 절규들을 들으며 상담원들도 차마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했다. 경남 창원시 북면 동전리 사회복지법인 '범숙'이 운영하는 창원여성의 집이 이곳을 거쳐간 여성들의 피맺힌 경험담들과 관련자료들을 모아 가정폭력연구 무크 1집 '가정폭력은 없다'를 냈다. '나는 살고 싶다'는 제목의 수기를 게재한 박모(39)씨는 남편으로부터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다 탈출, "더 이상 남편도 자식도 필요없다. 평생 안부딪히고 살고 싶다.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끼친다"며 치를 떨었다. 그녀는 "수면제 80알을 먹은 지 5일만에 깨어나자 '죽으려면 나가서 죽으라'며 또 때렸다. 손과 발을 묶고 밥도 안주고 요강과 물 한 그릇만 준 채 4개월동안을 가두었다"고 털어놨다. 8편의 '매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한 상황들을 충격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최모(37)씨는 "젓가락으로 찌르고 밥 먹다가도 수저로 머리를 때렸다. 울면 테이프로 입을 막아놓고 때렸다. 화장실 가면서 머리를 공처럼 차고 들어오면서 차고...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모든 남자들이 무섭고 싫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부부라는 이 끈을 풀고 싶습니다"고 애원했다. 5명의 인터뷰 '다섯여자가 주먹안에 있었던 이야기' 속의 김모(32)씨는 "남편이 집에 와서 술을 마시면 너무나 겁이 나서 칼을 숨겨놓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서 있었어요. 소리만 지르면 도망가려고요"라며 소리없이 울었다. 책 중간중간에는 대피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입은 상처들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고 뒷부분에는 매맞는 여성들을 위한 전국의 쉼자리도 안내하고 있다. 창원여성의 집 조현순(趙顯順.50)관장은 "10년째 가정폭력 상담을 해오면서 말로서는 공감을 얻는데 한계를 느껴 사회전반적으로 퍼진 폭력문제를 온몸으로 거부한다는 몸짓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정학구기자 b94051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