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초 일본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독서계에서도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시대가 흔들리고 장래가 어둡게 느껴질 때 우리는 흔히 과거의 영웅 또는 영웅시대를 뒤돌아보면서 새 시대에 기대를 걸고자 한다.

''로마인 이야기''가 풍미한 데에는 이런 사회심리가 반영됐던 것 같다.

사실 영웅시대로 치면 서양의 그리스와 동양의 몽골시대도 충분히 로마시대와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로마인 이야기처럼 대중의 인기를 끌만한 동·서양 서사시가 출판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가 담겼으면서도 시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서사시를 갈구할 수밖에 없다.

보통 철학 사상의 원형은 시공을 초월한다.

또 시적 영감은 지혜의 샘으로 인도해 준다.

비록 한국이나 동양의 것은 아니나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단편이 발행되어 소개한다.

브룩스 핵스턴(Brooks Haxton)이 그리스어의 원전에서 번역한 ''묻혔던 단편(斷片)-헤라클레이터스의 지혜(Fragments,The Collected Wisdom of HERACLITUS)''(Penguin Group,New York,2001)가 그 책이다.

헤라클레이터스는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다.

최초로 탁월한 상대성이론과 변증법을 논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핵스턴이 영어로 번역한 이 책은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나 정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시처럼 읽기 편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여러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먼저 헤라클레이터스는 사물의 본질을 불이라고 보았다.

탈레스(Thales)는 물이라고 보았고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라고 보았다.

이밖에 아낙시멘더(Anaximander)는 찬 것과 더운 것의 결합이라고 보는 등 고대 그리스 사상가의 사물의 본질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터스의 사물의 본질에 관한 견해보다 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만물은 불의 교환이고/불은 만물의 교환이다.

/마치 곡식이 식량으로 쓰기 위하여/화폐로 교환되는 것과 같다''

이 시구는 에너지가 사물의 본질이고 모든 사물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에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단초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레닌이 랏살레(Lassalle)의 책 ''에페소스의 어두운 철학자-헤라클레이터스''를 개관하면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헤라클레이터스가 소박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제시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즉 ''만물은 흐른다/동일한 강물에는/두 번 빠질 수 없다…같은 강물에 들어간 사람에게는/계속해서 다른 물이 흐른다'' ''발생하는 모든 것은/대립에 기인한다…''등이 고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원시적 설명이다.

지적 호기심을 지닌 현대인들이라면 비록 시대는 달라졌어도 헤라클레이터스의 시문을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현대적 해석을 통해서 우리에게 쉽게 헤라클레이터스의 지혜를 접하게 해준 것은 영역자 브룩스 핵스턴의 탁월한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