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합천 대병면의 버스정류장.

1시간 뒤에나 올 황매산 연결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노인을 만났다.

정치인 이인제씨 이름과 같아 누구든 한번 들으면 잊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센 사투리억양으로 말을 이었다.

"장(늘)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뭣이든 그저 그렇게 보이기 마련이죠. 어디를 가든 새롭고 좋은 것을 본다는 마음가짐이 앞서야 제대로 된 구경을 할 수 있어요"

칠십연륜이 느껴지는 여행철학.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러준대로 두심에서 내려 또 50여분을 걸었다.

봄 가뭄으로 바짝 마른 논, 밭을 지나 황매산자락 영암사지에 닿았다.

어둠이 조용히 내려 앉았다.

이튿날 일찍 황매산(黃梅山.1108m) 산행을 서둘렀다.

황매산은 합천과 산청의 경계에 선 암산.

합천댐이 만들어 놓은 합천호 깊은 물에 밑자락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물위에 핀 매화 같다고 해서 수중매로도 불린다.

인근 가야산의 유명세에 눌려 늘 뒷전이지만 이맘때면 연분홍 철쭉과 야생화로 이름을 드러내는 산이다.

특히 철쭉군락과 색이 여느 철쭉명산에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길목에 영암사지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절터다.

해인사 스님들이 한다는 발굴작업이 끝나지 않아 여기저기 어지럽다.

허름한 요사채만으로 쓸쓸했다.

저만치에 새로 지어 놓은 큰 법당과 대비됐다.

보물 3점만이 옛 영화를 헤아리게 했다.

유명한 쌍사지석등(보물 355호), 바로 앞의 3층석탑(보물 480호),왼쪽 뒤편 서금당자리의 귀부(보물 489호).

특히 쌍사자석등이 자꾸 눈길을 끌었다.

영암사지 오른편으로 난 농수로를 따르다 왼쪽으로 꺽어 올랐다.

황토색 오솔길에 들어선지 25분.

갑자기 나타난 바윗길을 오르자 국사당이 나타났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했던 터라고 한다.

왜 산허리가 보이지도 않는 곳을 기도처로 택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의 의중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굳게 박힌 철막대를 잡지 않고서는 오를수 없는 수직 바윗길이 이어졌다.

그 위에 덩치 큰 바위들이 무리지어 넓게 펼쳐졌다.

황매산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는 모산재 절경중의 으뜸인 곳이다.

순결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서면 바위틈이 오므라져 빠져 나올수 없다는 전설의 순결바위, 임진왜란때 의병들이 싸웠던 황매산성터를 지나 1시간여만에 모산재(767m) 정상에 섰다.

"철쭉군락 0.6km"라 쓰인 팻말이 야속했다.

1.7km 가파른 산길에 힘을 쓸대로 쓴 상태.

그렇다고 철쭉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짧은 내리막에서부터 무리지어진 철쭉이 보였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활짝 펴 연분홍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간간이 하얀색 철쭉도 눈에 띄었다.

황매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오르막 역시 철쭉터널.

연분홍 색깔은 진달래에 비해 수수하고 차분했다.

화장하지 않은 시골처녀의 느낌.

식용여부에 따라 참꽃(진달래), 개꽃(철쭉)으로 달리 불렀던게 미안할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색깔에 묻어났다.

키 큰 나무들로 인해 탁트인 맛은 없었다.

그러나 힘을 내 조금 더 올라가볼 일.

정상 아래 목장지대인 황매평전의 철쭉밭이 또다른 감흥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