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 반했어요.가야산을 오르는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더라구요.그 절의 고요함이 고향과 근원의 의미를 깨닫게 해줬고 내면에 감춰진 감성을 하나씩 일깨워줬습니다"

프랑스의 젊은 시인 장 크리스토프 이사르티에(35).

그는 얼마전 펴낸 시집 ''사랑의 미로(Labyrinthe de l''amour)'' 첫 머리에서 ''해인사의 고요한 아침''을 노래했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자욱한 안개 속에/나무들은 갇혀 있고/먼 동쪽 나라의 이미지처럼/구름에 기대 선 산사에서/범종소리 들려오는데/(중략)/그대 즐거운 사람아 인사하라 극락의 열매에''

그는 안개와 구름에 싸인 해인사의 아침을 부처님 눈과 금빛의 태양 이미지로 접목해 수준 높은 관조의 세계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집에는 ''신라의 공주들'' ''가을'' 등 한국 관련 시가 5편이나 담겨있다.

시집 제목도 가수 최진희의 히트곡명을 그대로 썼다.

그는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고속철도 떼제베(TGV) 생산회사인 알스톰의 국제비즈니스 담당으로 한국에 파견돼 2년간 근무했다.

90년대 초반 구리 영광 무주 청평 등을 두루 돌았고 현대전자 한국중공업 효성 등과 파트너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시집을 서 이리스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서 이리스(5)는 미국에 두고 온 그의 딸.

그는 미국에서 입양아 출신의 재미 한국 여인을 만나 딸까지 낳았으나 우여곡절 끝에 헤어졌다.

딸은 재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대화 도중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남 모를 사연을 품고 사는 아픔이 짙게 배어났다.

지금은 새 사람을 만나 6월께 귀염둥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부모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이 때문에 그는 시에서도 ''인간애''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와인 산지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최고 명성의 국립공과대학(그랑제콜)을 졸업했다.

대학원에서는 국제경제학을 전공했다.

다국적 엔지니어로서의 경력도 화려하다.

그러나 ''글 쓸 시간을 벌기 위해'' 최근 알스톰을 그만두고 ''보수가 적은 대신 덜 바쁜'' 국영 전력회사로 옮겼다.

프랑스에서도 시는 밥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시가 좋고 글쓰는 일이 좋아 세속의 영화를 버렸다.

요즘에는 소설까지 쓰고 있다.

파리=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