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효임콜롬바 김효주아네스 자매"(유채,69.5cmx46.5cm)는 지난8일 미국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 자택에서 1백세의 나이로 타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화가 장발 화백이 1930년에 그린 작품이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걸려있다.

우석 장발화백은 1901년생이다.

우석은 부통령과 내각책임제의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 박사와 두 살터울인 바로 아래 동생이다.

광복후 미군정청 학무국장으로 서울대 미술대학 산파역을 맡았고,초대 서울대 미술대학장을 역임했다.

김 자매는 1839년에 순교,1925년에 복자 위에 올랐다.

교수형을 당한 자매는 이 작품에서 순교와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와 검을 각각 나눠 갖고 있다.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성화로서의 격을 갖췄다.

평면적으로 단순화된 주름의 반복과 명암의 표현은 치마의 천이 갖는 재질상의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중후한 무게를 더해 준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인물의 절제된 동작 가운데는 순교하기까지 천주를 받든 이들의 거룩하고 굳은 신앙심이 드러나 있다.

나란히 선 자매의 뒤로는 원근법에 의거한 단순한 평야에 강이 흐르는 자연이 펼쳐져 이 그림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장 화백 조형의식 핵심은 "시대정신"과 "현대적 조형미"를 발현한 종교예술의 창작이다.

그는 깊은 신앙심에 기반하여 순수한 신앙적 동기로 교회의 전례를 위한 종교미술의 범주안에서 작품활동을 했지만 구시대적이고 고답적인 비예술적 작품성향은 늘 경계했었다.

우석은 오늘날 미술계에서 파벌을 꼬집을 때 입버릇처럼 들먹이는 "서울대파" "홍대파" 라는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1955년,대한미협 회장선거에 출마,춘곡 고희동을 상대로 일전을 겨뤘다.

투표결과는 춘곡이 이겼지만 정관상 1표가 모자라 말썽이 생겼다.

이 일이 불씨가 되어 장 화백은 미협을 탈퇴,한국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한국미술가협회는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장이었던 장화백을 지지하는 세력들이었고,대한미협은 춘곡을 정점으로 홍익대 미술학부장이었던 윤효중,이종우,도상봉 화백등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미대학장이었던 장발,홍익대 미술학부장이었던 윤효중을 지칭,"서울대파""홍대파"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대한미협과 한국미술가협회는 1956년 5회 국전이 공고되면서 심사위원 선정문제로 대한미협이 국전을 보이코트,반목의 골이 깊어졌다.

국전을 통한 두 단체의 싸움은 급기야 정치사건으로 비화,국회 문교분과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일도 있다.

월간아트인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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