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서 장르 구분은 의미가 없다.

한국화가가 서양화를 그리는가 하면 서양화가가 사진작가로 변신하는 경우도 흔해 졌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미디어아트같은 매체영상물을 이용한 작품들이 강세를 띠고 있다.

그 중심축은 30대에서 40대초반에 이르는 젊은 작가들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기획 "Art & Artist"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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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최순희(36)씨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작가다.

대학(동덕여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다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디자이너 일을 터부시하는 게 미술계의 일반적인 정서라는 점을 감안할때 그는 ''외도''를 한 셈이다.

90년대 초부터 의류업계에서 일하길 5년.

논노패션 디자이너,의류메이커인 ''프레이저''의 디자인실장 등을 역임했던 최씨는 패션업체들의 스카우트를 마다하고 다시 그림만 그리는 전업작가로 복귀했다.

"사회생활을 안하고 작업만 했다면 아마도 제 작품이 ''편협''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런 면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일로 얻은 게 많다고 봅니다.작업실에서 열심히 그림만 그린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반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며 자신의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작가는 지난 97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대학 졸업후 10년이 지나서 가진 전시회다.

전업작가치고는 ''신고식''이 늦은 셈이다.

하지만 그는 97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오는 24일부터 서울 관훈동 갤러리사비나에서 다섯번째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작품 주제는 ''시간''이다.

공간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자취''를 화면에 표현해 낸다.

"어릴 적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그때부터 저의 관심은 오로지 시간의 의미였습니다"

작가에게 공간이 드러난 질서라면 시간은 숨겨진 질서를 의미한다.

사실 시간과 공간이란 문제는 형상화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러한 주제를 어떻게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점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만학(晩學)의 집념이 무섭다고 했던가.

요즘 그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집(일산)과 작업실(월곡동)을 오가는 시간과 잠잘 때를 빼고 하루 14시간 이상을 그림그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내년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다.

"전업작가가 저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뉴욕에서 못다한 공부를 하면서 작품을 통해 저의 꿈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글=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