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사건은 결코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학자들은 역사에 관통하는 법칙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해왔고 역사발전의 인과와 경과를 성찰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무엇이 역사발전의 동력(動力)인가에 대해서만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돈(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진부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사회주의 사상을 떠받쳐온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생각을 발전시켜 이론화하고 사료로 뒷받침한 책이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인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은 ''현대세계(1700~2000)의 화폐와 권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현금지배사(The Cash Nexus)''(Basic Books,New York,2001)에서 네 가지 중요한 역사발전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경제가 역사과정을 결정한다.

둘째 민주주의가 부와 평화를 가져온다.

셋째 2차대전 이전 독·일의 과도한 제국주의적 경제확장이 오히려 영·미를 초일류국가로 되돌려 놓았다.

넷째 오늘날은 금융시장이 세계를 지배한다.

사실 네 가지 가설은 직관으로나 사실로나 인정할 만 하다.

퍼거슨은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18세기 영국에서의 전쟁과 권력투쟁이 어떤 제도를 만들어 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정치권은 전쟁 및 권력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비용과 정치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해야 했다.

그래서 국가는 직업세무관료제도와 과세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의회제도,세수 부족 보전을 위한 공채시장(公債市場),발권력을 지닌 중앙은행제도 등을 창설하고 정착시켰다.

국가간 경쟁은 앞에서 설명한 자금조달체제를 얼마나 잘 관리하는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자금조달창구인 금융시장시스템 구축에서 경쟁국인 영국에 뒤졌기 때문에 결국 영국에 패배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논지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금지배시대가 현대국가의 복지수요를 충족시킴은 물론 민주선거를 보장할 수 있을까.

현대정치가 수반하는 부패확산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적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더구나 역사는 전쟁과 권력투쟁,경제위기에 따른 재정부담 때문에 계층간 세대간 갈등을 증폭시킨 경험을 상기시켜준다.

과거 많은 국가들이 누적적으로 발행한 공채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크게 떨어지거나 상환부담을 차세대로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퍼거슨의 ''현금지배사''가 이런 현상까지를 포괄하는 역사발전의 일반론 정립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세계사 설명에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권력투쟁과 자금조달,금융발전사를 아우르고 있어 정치경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꼭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해도 역사에 법칙은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