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의 인기작가 다니엘 페낙(57)의 "말로센" 시리즈중 최신작 "정열의 열매들(Aux fruits de la passion.문학동네)"이 번역 출간됐다.

지난 99년 갈리마르출판사에서 나온 후 프랑스에서만 1백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말로센시리즈는 말로센 일가의 일곱남매를 둘러싼 모험과 사건을 그린 연작소설.

시리즈 1호인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가 1985년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총 5권이 출간됐다.

이 시리즈는 말로센가 남매들의 독특한 개성과 가족애를 바탕으로 엽기적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독자들을 깊숙이 빨아들인다.

모험소설과 추리소설 가족소설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

''정열의 열매들''은 전작들보다 구성이 단순해 한층 속도감있게 읽힌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일곱남매는 엄마의 ''정열의 열매들''이다.

엄마는 사랑에 빠지면 집을 나갔다가 불룩한 배를 안고 돌아와 아이들을 낳곤 한다.

이야기는 둘째누이 테레즈의 연애사건에서 시작된다.

동서고금의 점술에 통달한 무녀 테레즈가 명문대 출신 엘리트경찰과 결혼을 선언한다.

''콩가루집안''에서 자유롭게 자란 테레즈와 ''역사의 곡창에서 사육된 정치동물''의 결합은 순탄찮은 미래를 예고한다.

결국 첫날 밤 두 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난다.

작가 특유의 추리기법은 수사관들에게 사건해결을 일임하지 않는 데서 엿보인다.

''머리털부터 발톱까지 개성으로 무장한'' 일곱남매는 사건주변에서 각자의 추리로 실마리를 찾으려 하지만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말로센 가족의 장남이자 가족을 부양하는 뱅자맹은 전작들에서 처럼 이 작품에서도 범인으로 오해받는다.

그는 현대인들이 가진 ''불만의 화염''에 바쳐진 희생양의 상징이다.

주변 인물들의 행각은 흥미를 배가시킨다.

뱅자맹의 엄마와 사랑에 빠지는 형사 파스트로,파스트로의 파트너로 수사 중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노수사관 티앙,티앙의 죽은 아내가 결혼전에 낳은 딸 수녀 제르베즈,그녀의 자궁에 태아를 이식한 별난 외과의사 베르톨드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내력들이 중첩된다.

작가의 상황 묘사는 영화의 몽타주기법을 연상시킨다.

애완견 쥘리우스가 찻집에서 탁자위 찻잔을 쏟는 장면을 보자.

''커피가 쏟아지고 설탕그릇이 날아가고 업소 일꾼들의 날렵한 행보,물기닦는 행주.괜찮습니다.앉아 쥘리우스.새 케이크들,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얼룩하나 없는 냅킨들.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지요.부디 저놈 짓을 용서하시고…''식이다.

한 가족의 만화같은 모험담을 영상세대의 취향에 맞게 가공한 작품인 셈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불문학자 김운비씨는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마술적 사실주의 글을 썼다면 페낙은 만화적·우화적·핵융합적 사실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