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과 대나무'' ''먹과 벼루''

출판계 여성 인재들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출판업은 업무 특성상 부드러움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한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함은 독자들의 수요를 재빨리 반영하는데도 유리하다.

죽순처럼 말랑말랑하면서도 대나무처럼 강하게 줄기를 뻗는 외유내강형.

연한 먹과 단단한 벼루로 명필의 붓에 영혼을 불어넣는 역할이 바로 이들이다.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출판사는 대부분 여성이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CEO(최고경영자) 영역에서도 우먼 파워가 거세다.

1982년 편집부장으로 입사해 7년 만에 경영자가 된 박은주(44.김영사) 사장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황금손''으로 불린다.

온.오프라인을 접목하며 첨단 기법을 활용해 지난해 매출 1백2억원을 기록했으며 곧 코스닥시장 등록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영혜(48.디자인하우스) 사장은 무역회사에 다니다 디자인잡지 기자로 변신, 경영난에 허덕이던 회사를 인수한 뒤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창간하고 92년부터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등으로 단행본 시장에서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고교 국어교사를 그만두고 10여년간 문학 출판에 종사하다 93년 경영자가 된 박진숙(44.작가정신) 사장은 중편 위주의 ''소설향 시리즈''를 히트시킨데 이어 자회사 경영정신을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 등 경제.경영 베스트셀러도 석권하고 있다.

95년부터 경영을 맡은 강맑실(45.사계절) 사장은 최근 ''한국생활사박물관''으로 한국출판의 신지평을 연 주인공.그 전에도 ''역사신문'' ''세계사신문'' 등 돋보이는 기획을 주도했다.

아동도서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석(41.이레) 사장은 95년 창립 첫 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로 밀리언셀러를 선보이며 무섭게 떠올라 ''오두막 편지'' ''풍경'' 등 꾸준히 스테디셀러를 내놓고 있다.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넘으면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낸 여성 CEO들도 많다.

창업 2∼3년째를 맞는 이들은 참신한 감각으로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쏟아내며 출판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98년 창업한 강인숙(44.좋은책만들기) 사장은 늦깎이 독립형.

10년 가까이 편집일을 하다 아이들까지 키워 놓고 마흔이 넘어서 출판사를 차렸다.

처음엔 심혈을 기울여 펴낸 책을 서점에 들여 놓지도 못할 정도로 무명의 설움을 당했다.

전국을 뛰어다니며 직접 거래를 트고 매장 담당자들을 만나 설득한 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깨끗한 속옷을 입어라'' ''위대한 이인자들'' ''부자는 20대에 결정된다''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김종욱(43.위즈덤하우스) 사장은 출판사관학교로 불리는 김영사에서 9년간 경력을 쌓은 뒤 지난해 하반기 독립했다.

그는 첫 책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 ''CEO가 빠지기 쉬운 5가지 유혹'' 등 잇단 화제작을 선보이며 경제.경영서 분야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다.

김혜숙(42.참솔) 사장은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릴 때 문을 열었다.

12년간 근무한 문예출판사의 지원 아래 단돈 5백만원으로 곁방살이를 시작했다.

''퇴직시대, 120% 권리찾기'' ''게임 오버'' 등으로 입지를 굳힌 뒤 최근엔 인문.여성부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순(41.나무생각) 사장은 편집.기획 노하우뿐만 아니라 ''시적 감수성''이라는 무기를 하나 더 갖고 있다.

시인 안도현씨의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방송인 이숙영씨의 ''그대가 어느새 내 안에 앉았습니다''를 히트시킨 저력도 여기서 나왔다.

윤성혜(38.푸른샘) 사장은 15년 편집 경력을 토대로 영어교재와 어린이 동화책 시리즈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면 21세기 경영은 없다'' 등 경제.경영서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정혜옥(37.굿인포메이션) 사장은 신설 출판사답게 순수 국내 창작물로만 승부를 거는 ''모험''을 감행했다.

''바보 주식, 똑똑한 채권'' 등이 그것.

올해부터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외 저작물에도 눈을 돌릴 계획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