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걱정이 앞섰다.

5백리가 넘는 포항~울릉도 뱃길.

잔잔한 듯 해도 너울 심한 동해가 아닌가.

터미널을 빠져 나와 북동쪽으로 뱃머리를 잡은 썬플라워호는 맘을 놓게 했다.

워터제트로 추진되는 2천4백t의 거구.

시속 45노트(83km)의 질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따금의 앞뒷질도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조금은 무료했다.

시선에 닿는 것은 활처럼 휜 수평선이 전부였다.

눈이 감겼다.

그렇게 2시간40여분.

왼편으로 느닷없이 바윗덩이들이 다가섰다.

물꼬리를 곧게 하고 달려온 섬, 울릉도였다.

울릉도는 처음부터 시선과 마음을 압도했다.

바윗덩이들은 울툭불툭 우람한 기세를 뽐냈다.

검붉은 해안절벽 너머엔 잔설을 인 봉우리가 우뚝했다.

화사한 봄햇살에 빛나는 다양한 색의 조화가 이국적이어서 낯설기까지 했다.

서울 여의도의 8.5배 크기.

신생대 3~4기초 동해 밑바닥 화산활동에 의해 솟은 섬.

동해지기 울릉도는 야무진 모양새의 도동항을 뭍과의 통로로 내주고 있었다.

해안일주도로와 태화령을 넘는 육로탐험길을 서둘렀다.

갤로퍼에 올랐다.

일주도로 미개통구간인 저동~섬목간은 도선을 이용해 건너뛰기로 했다.

저동앞바다의 촛대바위(효녀바위)를 뒤로 하고 죽도를 멀리 지나 섬목에 닿았다.

관음도를 바라보며 관선터널을 지나자 3개의 거대한 바위가 이웃한 삼선암이 보였다.

목욕에 정신이 팔려 옥황상제가 내린 벌로 바위가 되었다는 세 선녀의 전설이 전한다.

물색을 보니 세 선녀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겼을 법 했다.

가위바위로도 불리는 일선암에는 풀 한 포기 없었다.

좀더 놀자고 졸라댔던 막내선녀에 해당하는 바위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그만큼 컸다는 설명.

관선터널 끝 양편 바위틈새로 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천부리 너머 멀리 송곳산의 윤곽이 역광 속에 뚜렸했다.

모양새가 신기했다.

꼭대기의 큰 구멍 사이로 햇살이 삐져 나왔다.

옥황상제가 낚시를 즐길때 배밧줄을 걸어두었던 곳이란 설명이 그럴듯 했다.

일제의 한민족 기꺾기 만행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추산마을 뒤편길을 따라 나리분지로 올랐다.

60만평 규모의 나리분지는 울릉도 유일의 평지.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돼 형성된 지역이다.

개척민들이 캐먹고 연명했다는 섬말나리는 볼 수 없고, 너와집과 투막집만이 그 시대의 삶을 전하고 있다.

산마을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토박이 최태윤씨가 안내한 산기슭에서 생명의 봄을 확인했다.

울릉도에서만 난다는 명이나물(산마늘)의 초록싹이 지천으로 푸르렀다.

겨울 막바지 굶주린 사람들의 생명줄을 잇게 해 주었다는 나물이다.

길을 내려 태하마을에 들렸다.

예전에는 유일하게 논농사를 지었던 곳.

조선시대 울릉도 순찰의 증거품으로 향나무와 함께 가져갔다는 황토흙도 이곳에서 캐갔다고 한다.

황토굴 옆 산호모양의 해안바위지대가 장관이었다.

저물녘 넘은 태하령길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청룡열차, 부메랑운전을 하지 맙시다"

조심운전하라는 현수막의 독특한 글귀가 재미있었다.

이튿날 오전 2시간30분간의 유람선관광.

떨어져 넓게 보는 울릉도는 또 다른 맛을 풍겼다.

울릉도의 상징이란 코끼리바위가 압권.

첨벙 뛰어들어 물을 들이키는 코끼리가 그대로 굳어진 듯했다.

거북바위 사자바위 곰바위 등도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며 줄줄이 이야기를 엮어냈다.

내내 유람선을 따랐던 갈매기떼가 더욱 떠들썩한 유람선관광을 연출해 주었다.

다시 약수공원 쪽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망향봉.

사람들을 뭍의 일상속으로 실어 나를 썬플라워호가 숨을 죽인 채 도동항에 진입하고 있었다.

울릉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