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은 자해(自害)하는 천성을 지녔다.

"전갈은 기분이 나쁘면 제 독침으로 제 머리를 찔러 죽인다(김철식의 시 "독침"중)".

인간도 마찬가지다.

불행앞에서 스스로 무너지곤 한다.

젊은 작가 이응준(31)씨가 전갈과 인간의 자기파괴성에 주목한 중편소설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작가정신)"을 내놨다.

작품은 삶의 승자에 바치는 경배가 아니라 패배자에게 던지는 연민이다.

이씨는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인간은 신(神)의 실패한 자화상''이라고 진술한다.

신은 인간이 자신을 찬양하고 복종하기를 원하지만 인간은 생리적으로 모반을 꿈꾼다.

길고 긴 업보의 그림자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재벌 2세인 그(이효신)와 그의 약혼녀 G,그의 섹스파트너 T,그에게 법망을 피해 마약을 전해주는 스티브 등 작중인물들이 그렇다.

불법상속문제가 불거지자 베트남으로 피신한 그는 술과 약물,여자에 중독된다.

재벌가문간의 정략으로 맺어진 약혼녀 G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의 기특함과 자존심이다.

G에게 남자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흥미로운 게임일 뿐이다.

그와 G는 상대의 타락을 알지만 관계를 유지해 간다.

결혼상대에게 요구하는 희망과 책임감은 빈자(貧者)들의 윤리일 뿐이다.

그를 마약과 육욕으로 인도하는 T도 베트남 고위장성의 딸이자 대학교수인 부유층이다.

T는 푸른색을 띤 향로인 ''카''를 숭배한다.

카는 평범한 향로일 뿐이지만 T는 여기에 신성(神性)을 부여한다.

T에게 카는 일종의 우상이며 고독한 실존의 도피처이기도 하다.

작중인물들은 마약과 변태섹스 환상 우상숭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탈출할 만한 용기도,의지도 이미 소진했다.

절망앞에 체념할 때 오히려 안도한다.

그가 단 한번 자신의 의지를 행사한 것은 권총을 집어든 ''그의 삶이 정확히 20초 남아 있었을 때''였다.

이런 상황이 작품속에 조리있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모순과 부조리 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약하며 그로 인해 악(惡)에 쉽게 전염되고 행(幸)보다 불행에 가까이 있다는 점을 작가는 상기시킨다.

이야기는 말라리아를 앓고 있는 그의 현재 시점에서 출발,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물들간의 관계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등 전작에서 주로 사용했던 1인칭 시점을 버리고 3인칭 시점을 택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