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색 바지 저고리에 엷은 옥색 저고리와 두루마기가 청아하다.

미술사학자 최완수씨(58.간송미술관 연구실장)는 늘 이런 한복차림이다.

의식주가 문화의 기반이요 문화적 독립성을 유지할 때 나라의 독립도 지속된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36년째 간송미술관을 지키며 민족문화,민족미술의 연구 및 대중화에 일로매진해온 것도 같은 이유다.

간송 전형필(1906~1962)선생이 수집해놓은 값진 소장품을 중심으로한 민족미술 연구와 저술작업은 일상적인 일이다.

요즘은 매주 수요일 저녁 교육방송(EBS)의 ''최완수의 우리 미술 바로 보기''를 통해 대중들과의 접촉이 더욱 잦아졌다.

원고청탁,강의 및 출연요청 등도 끊이지 않아 "정말이지 ''대중 속에서''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에겐 민족 고유의 미술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죠.학교에서도 서양미술만 열심히 할 뿐 민족미술에 대해선 기초조차 알려주지 않거든요.
근본을 모르면 사이비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는 오늘날 미술이 생활과 유리된 원인을 ''생활 따로,미술 따로,교육 따로''인 데서 찾는다.

옷입는 것,화단 가꾸는 것,집안 꾸미는 것 등 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게 미술이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교육과 서구문화 유입으로 삼국시대 이래 수천년을 이어온 전통문화가 단절되면서 미술도 생활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연구할 시간을 빼앗기는데도 강연이며 방송출연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우리 문화는 창피하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자기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자기를 비하하는 게 제일 나빠요.
조선시대의 당쟁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선이 5백년을 유지한 것은 당쟁을 통해 서로 비판하고 견제했기 때문입니다.당쟁으로 인해 조선이 망했다는 건 일제가 꾸며낸 얘깁니다"

최씨가 간송미술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간송이 작고한 지 4년 뒤인 지난 66년 4월.

당시 중앙박물관 미술과장이던 최순우 선생(작고)의 권유도 한 몫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대정신수대장경''.

서울대도서관에 1질밖에 없어 빌려보느라 고생했던 1백권짜리 대정신수대장경 전질이 간송미술관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 10년 공부거리는 되겠다 싶었는데 벌써 35년이 흘렀다"면서 "그동안 하도 펼쳐봐서 이젠 너덜너덜해졌다"고 했다.

대장경에 정신이 팔려 들어간 간송미술관에는 그러나 최씨가 평생 해야 할 숙제가 쌓여있었다.

간송이 일제하에 모아둔 어마어마한 양의 서화와 도자기 등이 창고에 보관돼있었던 것.

이를 정리,연구해 매년 5월과 10월 두차례의 전시회를 갖기로 하고 71년 첫 전시회로 ''겸재 정선 서화전시회''를 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오는 5월에는 60회 전시회를 열게 된다.

최씨는 "우리 문화와 미술의 특징은 강경명정(剛硬明正) 넉자로 압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강경함은 우리 국토가 전부 화강암으로 돼있는 데서,명정함은 사계가 분명한데서 연유한다.

겸재의 그림이나 추사의 글씨에서 보이는 이런 성격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의 고유한 특질이라는 얘기다.

그는 "지난 89년 한국경제신문에 ''진경산수''시리즈를 연재한 게 대중들과 처음 만난 계기였다"며 "연구실에서 공부만 하고 있는 나를 한경이 세상 밖으로 불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공부를 위해 결혼도 포기한 채 살아온 그는 옛날 선비처럼,절에서 스님들이 사는 것처럼 한국미술사와 문화사를 화두삼아 정진중이다.

새벽공부로 하루를 시작하고 젊은 학자들을 ''내제자''로 삼아 도제식으로 가르친다.

이렇게 가르친 제자만 40여명.

''간송학파''라고 자타가 공인할 만큼 일가를 이뤘지만 그는 늘 스스로 경계한다.

"대중들 앞에 자주 서다 보니 자칫 저도 모르게 교만하고 건방지게 될까봐 늘 자성하고 있어요.만일 그렇다면 덜 익은 것이지요.공부하는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게 그겁니다"

글=서화동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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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완수는 누구... ]

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경복중.고교와 서울대 사학과를 나왔다.

66년부터 현재까지 간송미술관의 연구실장을 맡아 한국미술사 연구에 주력해왔고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했다.

특히 18세기의 영.정조시대가 우리 문화의 절정기였다는 "진경시대" 개념을 정립,주목받았다.

퇴계와 율곡이 완성한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시.서.화 등 예술과 문화,사상,제도,경제,사회 등 전분야에서 고유문화가 만개했다는 주장이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진경산수화"라고 한 것도 그다.

"진경시대(전2권)""추사정화""불상연구""진경산수화""명찰순례(전3권)""겸재를 따라 가는 금강산 여행""그림과 글씨" 등 여러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