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운보(雲甫)김기창 화백이 타계했을 때 신문 방송 잡지들은 운보의 삶과 예술을 다루면서 그의 부인이었던 우향(雨鄕)박래현과의 이야기를 많이 소개했다.

필자도 운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향의 훌륭한 점을 이렇게 썼다.

그 하나는 우향이 운보와 결혼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간섭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과 다른 하나는 입이 닫힌 운보에게 말을 할 수 있게 구화(口話)를 가르쳤다는 점이다.

''노점(露店)''(종이에 수묵채색,266X211㎝)은 1956년 국전(國展)대통령상 수상작이다.

우향은 5월 대한미협전에서 ''이른 아침''으로 대통령상을,10월 국전에서 또 한번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 작가가 한 해에 두 개의 공모전에서 두번 최고상을 따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상도 상이지만 이 작품은 독창성이 돋보이는 우향의 대표작이다.

우향은 1951년 1ㆍ4후퇴 때 부군인 운보와 함께 친정이 있는 군산으로 피난갔다.

친정집 헛간을 개조해 만든 화실에서 전쟁의 와중인데도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들은 환도 후 1954년 4월에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부부전을 열었다.

운보가 예수의 일생을 그린 성화 30점과 함께 피난시절 이들 부부가 추구해온 새로운 동양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입체파풍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소설가 박계주는 이 전시를 두고 "지금까지의 고정적인 동양화에서 새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입체파를 많이 가미,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평했다.

이 때 이 부부의 그림은 입체파풍의 작업 때문에 상당히 닮아 있었다.

1956년에 제작한 ''노점''은 이런 점을 의식했음인지 운보에게서 멀찌감치 달아나 자신만의 창의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한 신문평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해 가는 동양화 전반에 자극을 주는 대담한 시도"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조형의식이 양화에서 비롯된 수법"이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1955년을 넘어서면서 우향의 그림은 대형화됐고 형체를 크게 포착해 화면을 분석적으로 구획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노점''은 형체의 단순성과 색채의 은은한 대비,나아가서 암시적인 구획선에 의해 힘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구성된 화면에 원근과 명암의 조형적인 가능성을 총동원했다.

여인들의 피부색은 동갈색으로 과장됐지만 특이한 여러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다.

우향은 1946년 결혼해서부터 1968년 미국유학을 떠날 때까지 운보와 한 화실을 썼다.

서로 닮지 않으려고 화실 가운데 커튼을 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일도 있었다.

월간 아트인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