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쇼펜하워는 참 못생겼습니다.

평생 여자들에게 퇴짜를 맞았지요.

죽은 뒤에 유명해졌지만 생전에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학자로 설움을 당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를 오래 여행한 뒤 베를린대학 교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강의라고 할 만한 것은 한번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젊은 강사로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헤겔에 맞서 강좌를 개설했는데 처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수강생이 많이 몰리는 헤겔의 강의와 같은 시간대를 고집했습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건 고독과 좌절뿐이었지요.

그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28년동안 은둔자로 지냈습니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고수했지요.

그래서인지 ''염세주의 철학자''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런 그가 행복론을 썼다니 참으로 역설적이지요.

며칠 전에 나온 ''불행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의 철학''(정초일 옮김,푸른숲)이 그것입니다.

이 책은 미완의 저작입니다.

지금까지 유고 속에 숨어 있던 것을 겨우 발견했지요.

잠언보다 약간 분량이 많은 성찰과 명상의 기록입니다.

''현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그는 즐거움을 좇기보다 고통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동양식으로 하자면 무소유의 철학이지요.

''고통은 삶의 본질이다.

외부로부터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간직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쓰디쓴 약과 같은 이 인식 앞에서 대개 눈을 감아버린다''

게다가 우리는 여러 핑계를 대며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내려 한다는 겁니다.

이같은 잘못을 그는 ''자유로운 자가 노예로서 주인을 모시고 싶어 우상을 생각해내는 것과 같다''고 꼬집는군요.

그는 삶의 즐거움이나 편안함에 연연해하지 말고 되도록 불행과 재앙을 피하는 일에 진력하라고 조언합니다.

또 ''어떤 사람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수용 자세에 따라 행복의 의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일깨워주는 구절입니다.

탐욕이 커다란 괴로움을 부른다는 경구도 빠뜨리지 않는군요.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주 듣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욕심부리면 탈난다…''

2백년 전 서양의 철학자가 한 말이나 동네 아저씨의 말이나 똑같은 진리를 담고 있지요.

''만약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보다 앞섰는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 뒤에 따라오고 있는가를 생각하라''

이 책은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노래한 다른 책들과 함께 읽어도 좋습니다.

지난해 출간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쌍소 지음,동문선),''단순하게 조금 느리게''(한수산 지음,해냄)등이 그런 책입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