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을 칠 놈''이라는 말이 있다.

욕은 욕인데 좀 말랑말랑한 욕이다.

왜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

옛날 종로 보신각 종으로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던 시절.

시간 단위를 자 축 인 묘,혹은 경(更)으로 나눴다.

삼경이면 한밤중이고 오경이면 새벽 다섯시쯤.

한 경은 6등분해서 점(點)이라 했다.

이 경과 점을 궁에서 북·징으로 알리면 각 순포막(파출소)에서 받아 징을 쳐 퍼뜨렸다.

어쩌다 통행금지에 걸려 붙들린 사람은 순포막에서 밤을 나게 된다.

졸린 순검이 "임마,넌 거기 앉아서 밤새 경이나 쳐"하고 졸면 꼼짝없이 경을 쳤던 데서 생긴 것이다.

물론 그 공로로 아침이 되면 석방됐다.

이훈종(83) 전 건국대교수의 입담은 구수하고도 실하다.

옛날 얘기를 어쩌면 그리 꿰고 있을까.

최근 나온 ''재미있고 유익한 이훈종의 사랑방 이야기''(전통문화연구회,1만원)를 읽다보면 우리 문화 백과사전을 보는 것 같다.

이씨는 일제 말년 경성사범학교를 나와 초·중·고교 교단을 차례로 밟은 뒤 건국대 문리과대학장을 지냈다.

굵직한 저서만 10여권.정년 후에도 팔순까지 60년동안을 교단에 섰으니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보냈다.

그의 이야기 보따리에는 인생과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뜨고도 못보는 해태 눈깔''에 얽힌 사연은 어떤가.

재판정에 풀어놓으면 옳지 못한 쪽을 알고 받아넘긴다는 신령한 짐승.

안동 김씨 전성기에 부패상을 잘 알고 있던 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놈들,해태가 본다.마음을 바로 가지렷다''하고 앉혀놓았다.

그런데 민씨가 득세하면서 정치는 더욱 곪아터지는 판이라 보다 못한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 말이었다고 한다.

''웃기는 싱겁게,동상전엘 갔나?''하는 말에는 궁녀들의 슬픔이 배어있다.

임금 얼굴도 못보고 독신으로 늙어야 하는 나인들은 은밀한 물건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물건을 파는 동상전엘 갔다가 차마 말은 못하고 장옷 사이로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러면 주인이 알아보고 잘 포장해 내준다.

이런 이면을 아는 한량들이 까닭없이 웃는 사람을 보고 빈정댄 것이 내력이다.

은장도는 여인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갖고 다녔는데 몽고에서 온 풍습이다.

여행자가 천막을 찾으면 반드시 재워줬던 유목민 세계에서 장도는 즉석에서 고기를 썰어 먹는 생존 도구였다는 것.

이씨는 고증이 덜된 엉터리 사극들을 자주 꼬집는다.

''별당아씨''에서 병자호란 후 항복 절차를 밟을 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강요당하는 장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네 머리를 때리라''고 명령하는 대목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세번 손 짚어 절하되 한번에 세번씩 머리를 땅에 조아리라는 뜻인 걸….아이구,공부 좀 하시라"

평소 무심코 쓰는 ''찬물을 끼얹다''는 표현도 그렇다.

자기집 개가 좋은 씨를 받기를 바랐는데 옆집 똥개하고 교미하자 못마땅해 찬물을 한동이 끼얹어 떼어놨던 연유는 모르고 아무 자리에서나 쓰는걸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빼도 박도 못한다''도 함부로 쓸 말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경의를 표할 때 쓰는 예포 의식은?

대포 한 방 재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던 옛적 양쪽 우두머리끼리 공포를 쏘아 ''이제 포에 탄환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알린 것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