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을 탄생시킨 또 하나의 비밀.오스트리아 역사학자가 쓴 ''히틀러의 여인들''(안나 마리아 지크문트 지음,홍은진 옮김,청년정신,8천5백원)은 치맛자락에 감춰진 권력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제3제국은 남성 동지들보다 더 열정적인 여인들의 희생 위에서 탄생했다.

히틀러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정부(情婦)들.이 책에는 사랑과 광기로 얼룩진 비운의 여성 8명이 등장한다.

삼류 연애소설을 좋아하던 사진관 점원에서 히틀러의 숨겨진 여인으로 급부상한 에바 브라운.그녀는 총통의 방공호에서 동반자살하기 직전에야 결혼반지를 받았고 그 반지를 낀 채 서른셋의 짧은 삶을 끝마쳤다.

방공호에서 여섯명의 자식을 먼저 죽이고 히틀러의 뒤를 따른 선전장관 괴벨스의 아내 막다 괴벨스,히틀러의 심복 괴링을 만나 대배우로 화려한 생활을 즐기다 전범수용소에서 큰 대가를 치렀던 엠미 괴링의 말로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를 만든 최고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여걸 중의 여걸이었지만 히틀러와 나치 선전에 일생을 바쳤다.

변방 출신의 히틀러를 뮌헨 사교계에 소개하고 상류사회 예법을 가르치며 가정교사역까지 맡았던 엘자 브루크만,삼촌인 히틀러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다 애인을 빼앗기고 의문의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조카 겔리 라우발,보석을 팔아가며 어렵던 시절의 히틀러를 뒷바라지한 헬레네 벡슈타인….

에바에게 자리를 뺏기고 유대인 말살에 앞장선 발두어와 결혼했던 헨리테 폰 쉬라흐의 맹신에 가까운 흠모까지 숱한 이면사가 책 속에서 꿈틀거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