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펄벅의 ''대지''를 접하자 마자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중학교 때 고향 보령을 떠나 대전으로 유학와 보았던 드넓은 ''한밭(대전)''의 기억이었다.

밀고 밀리던 6·25의 포연이 걷히자 건물은 무너지고 구릉은 파여 썰물이 빠진 보령의 갯벌같은 황량한 ''한밭 땅''.

펄벅의 대지와 대전이 묘하게 오버랩됐던 것이다.

대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혈기왕성하던 학창시절이었다.

그 때는 무엇보다 왕룽의 셋째 아들 왕삼이 군벌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참 뒤 성인이 돼 다시 들춰본 대지에는 3대에 걸친 수많은 세월과 파란만장한 삶이 녹아있었다.

인간사의 무상함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곳으로의 귀의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IMF위기가 터지고 한국경제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릴 때 머리 속에는 언제나 대지가 떠올랐다.

나라가 마치 전란에 휩쓸린 듯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우리의 대지만은 굳건히 버텨 마음의 안식이 되고 재기의 기반이 된다는 믿음과 의지가 필요했다.

두보의 시구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나라는 무너져도 산하는 그대로 있다)''도 이와 같은 심정을 읊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1998년초 고금리 고환율 속에 국내 유수의 기업과 금융회사가 줄지어 쓰러져갈 때에는 대지에서 봤던 메뚜기 떼가 연상되기도 했다.

하늘 저편에서 새까맣게 몰려왔다가 곡식의 그루터기만 남기고 오랫동안 공들여 가꿔왔던 희망들을 한 알 남김없이 앗아가 버리는 메뚜기 떼에 덮여버린 것처럼 그 당시 한국경제는 질식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왕룽과 그의 아내 모란이 온갖 천재지변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땅의 포옹을 받아들였듯이 한국경제도 회생의 발판을 되찾게 됐다.

아직도 대지 위에는 눈이 덮혀 있지만 멀지않아 온갖 들풀들이 꽃을 피울 것이고 보면 마음 한쪽 귀퉁이로 밀쳐 뒀던 여유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중에 시간이 나서 대지의 1,2,3부를 다시 차분히 읽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