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지만 산사의 새벽 공기는 아직 매섭다.

전각(殿閣)이며 당우(堂宇)들의 지붕은 눈을 인 채 하얗고 비탈이라도 오를라 치면 넘어질까 걸음걸음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과 함께 해인사를 지키고 있는 해인총림 방장 법전(法傳.77) 스님이 수행자를 향해 던지는 경책은 더욱 매섭고 칼바람같다.


"해제(안거를 마치는 것)를 했다고 화두를 놓고 돌아다니는 수행자는 때려죽여도 죄가 안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해제나 결제(안거를 시작하는 것)는 날짜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어요.

수행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의심덩어리(화두)가 없으면 모양만 결제요,돌아다니더라도 이것이 살아 있으면 해제를 해도 해제가 아닌 것입니다"

전국 82개 선원에서 1천6백66명의 수좌들이 석달간의 참선정진을 마친 지난 7일 해인사 대적광전.

법전 스님은 해인사 선원(소림원)과 산내 암자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마친 1백20여명의 수좌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안거가 끝난 뒤 수행정진의 태도가 흐트러질까 경계하는 마음에서다.

"수행자에게 화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며 자성(自性)을 깨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 비로소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행동을 철저히 화두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길을 걷다 돌부리에 채이면서 깨침을 얻을 수도 있고 새소리나 물소리,상갓집 곡소리를 듣고도 깨달을 수 있어요"

법전 스님은 11세 때 영광 불갑사로 출가,24세되던 1947년 선풍진작을 위해 성철 청담 등 한국 현대불교를 이끈 20여명의 스님들과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던 선승이다.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拖死屍句子·타사시구자)''가 당시의 화두.

''부엌에서 칼질하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뭔가 경계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는 법전 스님은 "꿈에도 화두가 들려지는 그 법열(法悅)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후 법전 스님은 성철 스님의 법제자가 됐고 제방선원을 돌며 정진했다.

"나물 캐고 밭매고 탁발해가며 수행했던 그 때에는 공부해 득력(得力)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뒤 신도들이 돈을 갖다주고 해서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그런 사람이 없어졌어요.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라,도는 춥고 배 고플 때 나오는 것입니다"

조계종 종회의장,총무원장,해인사 주지 등을 거쳐 1996년 방장에,지난해 10월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된 것은 수행자로서의 한결같은 삶 때문이다.

해제일을 맞아 해인사를 찾은 기자들에게도 법전 스님은 중국 송나라 때 자명대사와 제자인 양기대사의 고사를 들며 꾸준한 정진을 강조했다.

당시 절 살림을 맡았던 양기 스님은 5천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을 보살피는 한편 매일 새벽 자명대사를 찾아 법문을 청했다.

그러나 자명대사는 "자네,원주(주지)나 잘 하게"라는 말만 40년간 되풀이했다.

마침내 양기 스님이 "왜 법문을 해주지 않느냐"고 따지자 자명대사는 "나는 40년 동안이나 법문을 해줬는데 자네는 못들었나"라고 말해 그 순간 양기 스님은 확철대오했다는 것.

법전 스님은 "불교에선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을 흉보는 걸 도둑질이라고 한다"며 "우리 모두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기반성을 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알아야 사회가 편안해지고 정돈되며,실수가 적고 매사를 올바르게 처리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서로 헐뜯기만 하고 ''네탓이오''만 되풀이하는 정치판과 세간을 향한 경책인듯 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되고 서있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는 임제록의 경구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전 스님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꾼 뒤 ''내가 나인가,나비가 나인가''하고 의심했던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법전 스님은 이어 "양기 스님은 호롱불 2개를 갖춰 놓고 개인 일과 절 일로 사용할 때 구분해서 썼다"면서 "절의 소임자는 물론 공무원들도 공사(公私)를 명확히 구분해야 질서가 바로 선다"고 일침을 가했다.

세상을 올바로 사는 지혜를 가르쳐 달라는 주문에 법전 스님은 "뭐든 하면 이루고 즐거워지는 비법을 아느냐"며 ''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不貪爲上卦·불탐위상괘)''이라는 중국 당나라 때 한산(寒山) 스님의 시구를 들려줬다.

해인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