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는 퇴계 선생의 사상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 및 생태의 위기를 극복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세계화와 디지털의 시대에서 경쟁 및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될수록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올해로 탄신 5백주년을 맞는 조선 최고 철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의 사상이 갖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 이동환 퇴계학연구원 부원장(고려대 교수)은 이렇게 설명했다.

퇴계의 사상이 과거의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유효하다는 얘기다.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는 퇴계학 연구붐이 이를 말해준다.

국내 학계에선 이전의 이기론(理氣論) 중심 연구에서 벗어나 정치 교육 문학 자연관 등 퇴계 사상 전반으로 연구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퇴계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것.

최근에는 이기를 상제(上帝·하느님)와 관련지어 퇴계사상의 종교적 측면까지 고찰하는 흐름도 있다.

또 퇴계학 연구는 일본 중국 대만 미국 유럽 등으로까지 확산됐다.

일본에선 퇴계학이 근세 유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중국에선 개방 이후 퇴계 연구자가 급증했다.

''퇴계전서''의 번역 출간에 이어 지난해 12월 창춘(長春)중의학원에 퇴계학과 한의학의 접목을 위한 퇴계연구회가 설립됐다.

미국에서도 세계적인 학자 투웨이밍(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등 여러 학자들이 퇴계사상에 심취해있다.

이 부원장은 "퇴계는 이(理)를 기(氣)의 존재근거로서 뿐만 아니라 기와는 별도의 살아 움직이는 실재로 파악한 점이 특징"이라고 퇴계학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사단칠정(四端七情) 가운데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지만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라고 퇴계는 파악했다.

그는 "이(理)의 문제나 종교적 측면 등에서는 퇴계가 주자를 넘어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천여수를 넘는 퇴계의 시문학에 대한 보다 정치(精緻)한 연구와 정치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 부원장은 지적했다.

특히 퇴계가 벼슬보다는 자기수양에 몰두한 것으로 보는 기존 시각과 달리 보다 원대한 변혁의 구상을 갖고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고 덧붙였다.

기묘·을사사화 등으로 인해 당시의 현실정치에서는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서원창설운동 등을 통해 조용하면서도 원대한 변혁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퇴계의 인간적인 면모 또한 빼놓을 수 없다고 이 부원장은 말했다.

장유유서가 엄격했던 당시에 20여년 이상 차이나는 기대승과 8년에 걸쳐 ''사단칠정론쟁''을 벌인 일은 퇴계의 도량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 서울에 살던 큰 며느리가 출산한 뒤 젖이 모자라 본가의 여종을 유모로 쓰려 하자 "젖먹이가 딸린 여종이라 안된다"고 막았다.

일찍 청상과부가 된 둘째 며느리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는 것을 알게돼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토록 했다.

한편 퇴계 탄신 5백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이 추진된다.

탄신일(음력 11월25일)에 앞서 퇴계의 고장인 경북 안동에선 오는 10월 국제퇴계학회와 퇴계학연구원,안동대 퇴계학연구소,한국국학진흥원 등의 공동주최로 퇴계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또 이즈음 경북도와 안동시가 주최하는 세계유교문화축제에 맞춰 퇴계 유품 및 저작물 전시회가 마련되고 퇴계생가 근처에 기념공원도 조성된다.

아울러 퇴계학연구원의 퇴계학술상,퇴계 문중의 고유제 등도 마련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