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11월,홍대앞의 한 극장에서 만난 이지현은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재봉 연출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18세 여고생 와이 역을 맡았던 그는 당시 ''벗기는 연극아니냐''는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관객들도 원작 ''거짓말''의 정치적 함의를 보여주겠다던 연출가의 변보다는 이지현의 노출연기에 더 관심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연극에 출연했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당돌하게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였다.

지난해에는 영화 ''미인''에 출연,한바탕 장안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1년여 사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안방을 찾은 이지현(23).

지난 10일부터 방송중인 SBS 수목드라마 ''순자''(연출 문정수,오후 9시55분)의 주인공으로 김순자 역을 맡았다.

드라마 속 김순자가 2년 만에 연예계의 스타가 된 것과 1년새 드라마 주인공에까지 오른 이지현이 닮은꼴이라는 느낌이 든다.

연극과 영화,인터넷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에게는 ''순자''가 안방시청자에게 처음으로 평가를 받는 자리다.

"아직 연기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점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캐스팅이 결정된 후 연극배우출신인 백수연 선생님께 사사하며 연기지도를 받고 있어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1,2회에서의 연기는 영화 ''미인''때의 부자연스러움이 한층 나아졌다.

드라마의 일상적 연기가 제법 몸에 배어있다.

시골장터 순대집 출신의 순자는 타고난 미모와 야무진 성격으로 2년 만에 연예계의 스타가 된다.

하지만 스타가 되면서 체험한 연예계의 삶에 회의를 느껴 양심선언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연극이나 영화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순자도 우리사회의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라 솔직히 부담이 돼요.

그렇지만 천방지축인 순자의 캐릭터가 재미있고 맘에 들어요"

드라마 ''순자''에서도 이지현은 ''섹스 어필''의 강한 이미지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순대집 처녀에서 연예계 빅스타가 되는 과정을 묘사하며 그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한 장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제가 어린나이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작품들만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세요.

하지만 쟁쟁한 선배들과 연기호흡을 맞추며 안방시청자에게 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이번 드라마는 각별해요.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 평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