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학원''잡지에서 ''피에 젖은 과달카날''이라는 글을 읽고는 잠을 이룰 수 없었지요.

꽃다운 우리 젊은이 15만명이 목숨을 잃은 태평양 전쟁(2차 대전).

종군위안부와 노무자를 제외하고도 징용자가 38만명에 달했으니 결코 남의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작은 섬 과달카날은 최고 격전지였습니다.

비행장 하나를 두고 미국과 일본이 해·공군력을 총동원해 6개월간 싸우던 곳.

그는 그 역사의 현장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교가 되기로 마음 먹고 사관학교에 응시했지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공교롭게도 일요일에 시험 날짜가 잡히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울대 농대로 진로를 바꿨지요.

졸업 후 목재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을까요.

근무지가 솔로몬 군도로 결정됐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과달카날에서 지금까지 21년을 지냈습니다.

이건산업의 솔로몬 현지법인대표 권주혁(48) 상무.

그는 출장 때마다 미국 일본 호주 등의 박물관을 뒤지고 참전자들을 찾아다니며 1백종 이상의 자료를 발굴했습니다.

곳곳의 현장 사진도 찍어 그야말로 당시의 해전사를 발로 복원했습니다.

그 결과가 ''헨더슨 비행장''(지식산업사)이라는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한 뒤 미군에게 빼앗긴 헨더슨 비행장을 탈환하려 사투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히 되살린 것이지요.

작전 보고서와 해병사령부 서신,주요 항공기와 병력 등 양측의 전력 비교표까지 실었습니다.

전문 연구자도 하기 힘든 작업을 한 회사원이 해낸 것이지요.

어린 시절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루고 직장에서도 성공했으니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더 흥미롭군요.

그가 이룬 꿈의 이면에는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 지식산업사가 부도로 쓰러졌을 때 출판사를 살리자고 나선 사람 중에 한 명이 바로 박 회장이었습니다.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토양에서 이런 결실이 나왔으니 의미가 크지요.

권 상무에게는 이 책이 제임스 미치너의 퓰리처상 수상작 ''남태평양 이야기''보다 더 값진 성과입니다.

천왕성에서는 42년간 낮이 지속되고 42년간 밤이 계속된다고 합니다.

평생 살아도 낮과 밤을 한번밖에 볼 수 없지요.

그러고보면 우리네 하루하루가 곧 일생입니다.

점이 모여서 선이 되듯 순간의 연속이 삶이지요.

어린 날의 꿈을 하루도 잊지 않고 씨·날줄로 엮어 마침내 아름다운 천으로 직조해낸 그의 삶이 행간마다 빛납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