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젊은 시인 요한 페터 에커만은 당대 문필가였던 괴테의 집을 찾는다.

괴테에게 시평론을 보낸뒤 그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괴테의 열렬한 숭배자인 에커만은 이후 10년간 조수로 괴테를 보필한다.

매주 정기적으로 이뤄진 에커만의 방문은 두터운 대화록으로 남았다.

괴테는 에커만과 문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괴테문학전공자 사이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괴테와의 대화"(푸른숲)가 번역됐다.

괴테 만년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엿볼수 있는 책이다.

40세나 나이 어린 에커만은 스승 괴테의 말씀을 일일이 기록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공자의 논어와 비슷한 형식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는 제작과정에서 최상의 기쁨을 발견한다네.재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예술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작업을 끝낸 뒤 얻게 된 이익에만 관심을 갖게 되지.그러한 세속적인 목적으로는 결코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없네"

괴테와 에커만의 대화는 문학,철학,역사,연극,음악,건축 등을 넘나든다.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위대한 심리학자라고 하는가 하면 바이런을 고금을 통틀어 가장 생산적인 시인이라고 평한다.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영국 소설가 월터 스코트,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나폴레옹과 헤겔,베토벤과 모차트르도 괴테와 교류를 나눈 인물이었다.

"나는 근대 철학자 중에서 칸트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네.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읽어보게.그는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네.나의 "식물변형론"은 칸트와 같은 정신에서 비롯된 것일세" 중국과 인도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괴테는 종교및 역사문제에도 관심을 보인다.

"나의 "베르테르"가 나오자 이탈리아에서도 번역이 되었네,순식간에 초판이 한 권도 남지 않았지.주교가 교구의 사제를 동원하여 초판을 매점해 버린 것이네.나는 그것을 알고 화가 나기 보다 "베르테르"가 카톨릭교도에게 악서란 것을 간파한 신부들에게 기꺼움을 느꼈네"

에커만과의 대화는 괴테 작품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는 책에 속한다.

일찌기 니체는 "독일 최고의 양서"라고 말했다.

손자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인간 괴테의 모습도 엿볼수 있다.

1749년 프랑크푸르트생인 괴테는 아내와 아들을 잇따라 잃는 슬픔 속에서 만년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1792년 생인 에커만은 괴테의 마지막 10년을 함께 한 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 1854년 세상을 떴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