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년 새해 먼동이 튼다
동해물로 곱게 씻은 태양이
순금빛 열쇠로 새 아침 연다
공평하게 분배된 햇살을 물고
비둘기떼 훨훨 날개를 턴다
유리창엔 아직도 성에가 끼고
미명의 숲에 들면 발이 시린 나무들
저마다의 나이테를 굴리는 소리
곤고한 이마 위에 주름살 깊다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거나
발 동동 구르고 가슴 치며 살았다
온갖 바람의 멀미 속에서
욕망과 계산과 노여움과 질시로
몸살을 앓고 조마조마 애를 태웠다
간밤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엿듣고
혹시나 눈썹 셀까 잠을 설쳤다
이제 온누리에 새 아침이 밝았다
어른들은 서둘러 빗자루 들고 나가
잔설로 얼룩진 마당을 쓸 것이다
가가호호 입춘대길 방을 붙이고
설레이던 소식에 귀를 세울 것이다
얼어붙은 땅 밑엔 겨울보리가
습습한 새 촉을 밀어 올릴 것이다
아이들은 볕바른 언덕에 올라
푸른 꿈을 배접한 연을 띄울 것이다
방패연 가오리연 무지개연 까치연
하늘 높이 우러러 연을 띄우면
천상으로 내닫는 하얀 그리움
남과 북이 지켜보는 별이 되리라
강물은 슬픔이 깊을수록 푸르고
별빛은 어둡고 외로워야 눈부시거니
우리 이제 서둘지 말자,들뜨지 말자
날마다 서 있거나 누웠던 이여
아직도 추위 속에 갇힌 이여
내내 서럽고 쓸쓸한 이여,나오라
마음 속 빗장 풀고 瑞雪을 받자
새해 새 아침에 연하장 받듯
순금빛 모자 쓰고 들녘으로 나가자
그래도 춥고 허기지거든
그래도 서럽고 쓸쓸하거든
서릿발 허옇게 쓴 보리라도 밟아라!
가슴 속 얼레 풀어 연이라도 띄우라!
멀고 부신 별에게 약속을 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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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5년 충남 보령 출생.1970년 "월간문학"신인상,"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갈대는 배후가 없다""귀로 웃는 집""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등.서라벌문학상,현대문학상,소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