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거나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일 뿐이다.

그러나 현재 겪는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을 뛰어넘고 싶은 충동은 강할 수밖에 없다.

동서양의 지성사가 이것을 보여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민정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일의 도약을 위하여 구조조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재산 손실과 실업의 고통,새로운 제도와 질서에 적응하는 괴로움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제3의 길이 있을까.

오늘 이 시대의 지성인이 답해야 하는 가장 크고 절박한 질문이지만 아직 검증된 다른 해답은 없는 것 같다.

사회경제사에서는 실제로 경험하는 것 외에 명백히 다른 검증방법이 없다.

이와 비슷한 지성인들의 고뇌는 19세기 유럽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동구,그것도 제정러시아의 지성사는 이런 점에서 흥미를 끈다.

19세기 중엽까지 제정러시아는 전근대 사회에 머물렀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1백년 앞서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갖춘 터였다.

따라서 제정러시아의 경제력과 생활수준은 이들 국가의 수십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동구 지성인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주의체제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산업화에 따르는 인간 소외와 가진 자에 대한 굴종,참기 힘든 소득격차 등의 문제였다.

그래서 이 시대의 동구 지성인들,특히 혁명사상가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력을 능가하는 제3의 길이 있는가를 모색했다.

그 논쟁은 거의 40∼50년간 이어져 1917년 볼세비키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 시기 동구에서 벌어졌던 논쟁사를 잘 정리한 책의 하나가 A.와릭키의 ''자본주의 논쟁사(The Controversy over Capitalism)''(옥스포드대 출판)다.

이 책은 러시아 인민주의의 내용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41년 전에 나온 이 책을 다시 꺼낸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어정쩡한 인민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어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비판하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은 인민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인민주의 모형에는 러시아 집산주의형,중남미의 국가 이데올로기형,그리고 대규모 산업화 대신 전원에 근거한 소규모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탄자니아모형 등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은 내용과 방법에 있어 인민주의 색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미형 시장경제체제의 구축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제1부 인민주의 개념에서 1880년대 동구 지성인과 혁명가들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고전적 인민주의와 그 범주를 고찰했다.

3부에서는 인민주의와 마르크시즘을 나누어 해설하고 암묵적으로 그 성공을 확신한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꿈은 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1989년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오늘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검증 결과는 무엇일까.

모순도 있고 고통도 크지만 창조적 파괴가 성공한 시장형 발전경험 이외에 아직 제3의 길은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구조개혁의 고통을 이겨내고 내일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성과 지혜 그리고 인내심의 발휘를 요구할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역사를 창조하지만 결코 우리가 원하는 형태대로 정확하게 역사를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