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영웅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정치나 군사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경제를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모든 활력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적으로도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고 성군이 된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경영의 기본을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하고 이를 줄여 경제(經濟)라고 하지요.

태평성대에도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의 고생을 덜어 구제하는 일''이 군주의 책무였으니 지금같은 난국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요즘 서점에 영웅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난세의 지도자로부터 지혜를 얻는 책이 붐을 이룬다고 합니다.

엊그제 나온 책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의 천하제패 경영''(구스도 요시아키 지음,조양욱 옮김,경영정신)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앞서 나온 책들이 영웅 한사람의 난세경영을 다룬 것에 비해 이 책은 일본 전국시대의 리더 3인방을 비교한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이들은 천하를 지배하는데 경제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돈이 최고라는 식의 황금만능주의가 아니라 지금의 용어로 ''물류(物流)''까지 고려하는 감각을 지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낡은 사회시스템을 정비하고 유통경제를 출범시켰지요.

그는 오늘날의 벤처기업 열풍처럼 새로운 기술자나 상인들을 등장시켜 화폐 유통을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의 깃발에도 당시 통용되던 돈 ''영락전''을 그려넣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시스템 위에 자유경제와 근세 일본의 기본틀을 세웠지요.

그는 먹고 난 귤껍질을 약방에 팔아 옷을 살 정도로 수완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경영감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적지에서 쌀을 전부 사들여 적의 군량미 조달을 막고 대형 토목공사로 고용을 창출하기도 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해 내수 확대와 경제안정을 위한 구조개혁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에도에 굵직한 사업들을 유치하고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등 인프라 구축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때부터 2백65년동안 도쿠가와 막부의 탄탄대로가 확보된 것은 물론이지요.

이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구조개혁이 꼭 필요했던 시기였지요.

이들 세사람은 ''사람''과 ''물건''''돈''의 흐름을 조율할 줄 알았습니다.

전국시대의 최대 무기는 싸움터의 전략이 아니라 이들 ''경제인''의 통찰력이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리더의 덕목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21세기에 4백년 전 영웅들의 정책을 경제적으로 검증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노부나가는 기득권 세력 때문에 뜻을 다 펴지 못했고 히데요시는 사치에 맛을 들여 거품경제를 초래한 뒤 임진왜란으로 무너지고 말았지요.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경제에 강한 리더가 난세를 다스린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