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스타 ''슈퍼맨''은 기자였다.

영화에서 주인공 클라크는 위급한 상황이 터질 때마다 안경을 벗어던지고 푸른 망토를 걸친 뒤 현장으로 달려간다.

거기에는 워터게이트의 주범 같은 ''악당''이 있었다.

기자는 ''민주주의적 리얼리즘''의 전설적 영웅이었다.

제2의 자본주의 혁명을 맞고 있는 이즈음 기자는 하나의 ''미디어 워커(Media Worker)''로 전락했다.

조사에 따르면 기자가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인의 27%에 불과했다.

세계언론이 ''모니카 게이트''에 들떠있는 동안 TV뉴스 시청률은 60%에서 38%, 신문 구독률은 78%에서 59%로 떨어졌다.

최근 번역된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원윤수.박성창 옮김, 민음사, 9천원)는 현대언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묘파한 책이다.

파리7대학 교수인 라모네는 미디어를 제4부가 아닌 제2부로 규정하고 제1부로 뛰어오른 경제, 제3부로 밀려난 정치와 함께 ''삼권분립''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디어세계의 패자(覇者)는 TV다.

그들은 더이상 뉴스를 만들지 않고 사건을 ''재현''한다.

시청자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목격''하는 데 그친다.

기자는 단순한 증인에 불과하다.

실제로 24시간 뉴스전문채널 유로(Euro)뉴스의 간판 프로그램은 ''노코멘트''란 제목을 달고 있다.

TV저널리즘은 현실을 시나리오화하고 뉴스를 연출한다.

가짜만이 미학적이다.

어떤 이미지도 결백하지 않다.

후세인을 공격하기 위해서 프랑스 해변의 갈매기가 석유로 오염된 페르시아만의 물새로 둔갑한다.

문제는 TV뉴스의 ''이미지중심주의''가 신문까지 타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바이러스''에 감염된 인쇄매체는 ''다운''일보직전이다.

신문은 분석과 성찰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기사는 점점 짧아지며 백화점식으로 진열된다.

기자들은 상호 모방을 통해 각자의 특수성을 상실한다.

정보의 진실성은 증명에 있지 않고 반복에 있게 된다.

저자는 현대언론의 쇼비즈니스화는 1차적으로 TV에 책임이 있으나 신문 또한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성보다 감성, 해설보다 고백에 의존한 죄다.

클린턴에게는 ''미디어린치''를 가하면서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에겐 백기를 드는 현실이다.

분명 미디어적인 것이 세계를 움직인다.

지구는 지난 30년간 과거 5천년 동안 생산된 것보다 많은 정보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 일요판 한 부에는 18세기 교양인이 평생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많은 것이 담겨있다.

1985년 세계인은 원거리통신에 1백50억분을 할애했으나 2000년에는 9백억분을 사용했다.

과잉통신.과잉정보.과잉정서 시대다.

저자는 미디어폭발 사회일수록 정도를 걷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11시뉴스 사회자는 프로그램 마지막에 원고를 뒤로 집어 던지며 "오늘 본 것을 내일 다 잊어버리라"고 말하지만 오늘 보고 생각한 것을 내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충고다.

정보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인 하나의 ''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