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를 알아야 문화가 보인다''

안휘준(60)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회화사 연구에 30여년을 바친 그가 묵직한 책 두권을 동시에 냈다.

논문 28편을 모은 8백64쪽 분량의 ''한국회화사연구''와 60여편의 논평 수필을 엮은 ''한국의 미술과 문화''(시공사).

''한국회화사 연구''는 단순한 논문집이라기보다 시대와 주제를 씨줄 날줄로 엮은 한 권의 통사(通史)다.

''한국회화사''를 비롯 ''한국회화의 전통''''한국회화의 이해''로 이어지는 4부작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신라·백제 인물화,고려 벽화와 불화,조선 초기 안견의 화풍,조선 후기 허련과 장승업의 계보까지 아우르고 있다.

시대별 총론을 각 장의 앞부분에 배치하고 주제별 각론을 펼친 다음 중국이나 일본 회화와의 영향을 덧붙여 우리 회화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시기는 조선 초기.

회화사의 전성기였던 조선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5세기 안견과 그의 화파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견은 후기의 정선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산수화 대가로 꼽힌다.

저자를 따라 안견의 유일한 진품 유작인 ''몽유도원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그림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사흘 만에 완성한 걸작이다.

안평대군은 당시 2백여점의 중국 서화를 소장하고 있었던 열성 수집가.

그의 발문이 이 그림 왼쪽에 적혀있다.

동양화에서 횡권(옆으로 길게 펼치는 화폭)의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인데 이 작품은 그 반대다.

낙관도 오른쪽 밑에 있다.

두 갈래의 좁은 산길이 왼쪽 아래의 코너 부근에서 출발한다.

첫번째 길은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돌아 사라지고 두번째 길은 기암절벽의 바위산을 돌아 도원으로 연결된다.

오른쪽에 있는 도원은 약간 높은 각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져 있다.

도원 중앙에 있는 산 하나의 높이를 더 낮춘 조감도법은 안견의 탁월한 공간감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평원과 고원의 대조,안개와 바위산의 대비,대각선 운동의 교묘한 운용 등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구현한 것이 바로 이 작품.

중국화풍을 주체적으로 소화한 다음 그 위에 독특한 화법을 정립시킨 안견의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깊고 풍부한 우리 회화의 자양분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한국 회화정신의 밀도''를 농밀하게 드러낸다.

또 ''한국적인 화풍이 18세기 겸재 정선에 와서야 형성됐다''는 일제 식민사관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이미 삼국시대에 한국회화의 독자적 특성과 양식이 확립됐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그 전통이 조선시대의 진경산수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함께 펴낸 ''한국의 미술과 문화''에는 우리 전통미술을 이해하는 기본 뼈대,시대별 개요와 흐름,미술문화재와 유적,미술문화 연구에 대한 논설과 문화정책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