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칭에 얽매여 있습니다. 1인칭은 자기중심주의, 2인칭은 타자중심주의를 가리키죠. 3인칭의 경우 우리는 시장에 나온 상품처럼 물질화됩니다. 모두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이죠. 제가 꿈꾸는 것은 4인칭,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시인 김승희(48)씨가 1995년 이후 5년만에 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민음사)을 펴냈다.

1995∼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친 뒤 1999년부터 서강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씨는 ''늑대와 달리는 여성''이란 별명을 지닌 샤먼적 감수성의 소유자다.

김씨는 새 시집에서 남성/여성, 제국/변방, 권력자/약자의 구도 위에 소외와 억압의 현실을 고발한다.

''식탁이 밥을 차린다/밥이 나를 먹는다/…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신용카드가 나를 분실신고한다/…신문지가 얼굴을 와락 잡아당겨/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신문이 된다/몸에서 활자가 벗겨지지 않는다''(식탁이 밥을 차린다 중)

주객 전도의 참담함을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구멍난 양은냄비를 타고 자본주의의 하늘을 날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소재로 한다.

김씨에 따르면 두부처럼 규격화된 우리의 삶은 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에 깊이 침윤돼 있다.

신문의 부음란은 망자에 관한 정보 대신 ○○○부친상, ○○○빙부상 등으로 채워져 있다.

김씨는 죽은 자보다 그의 핏줄이 중시되고, 사위가 딸을 대신하는 현실에서 가부장제를 읽는다.

''당신은 노래방에서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삼십분 넘게 앉아 있어 본 적이 있는가/당신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수원지에 독극물을 붓는 사람/…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 그, 그 장본인이 된다/…노래방 체제가 한국의 유일한 체제이며/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한국은 노래방 중)

그러므로 달력에 없는 ''13월13일''의 사랑을 꿈꾸는 김씨는 하루에도 9백99명씩 시인과 천재를 잡아먹는 서울에서 국가와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원초적 자유를 찾아 탈주를 감행하는 것이다.

''휘두르듯 내쳐진 자루 걸레/먹을 듬뿍 찍어/병풍위로 질질 끌고 다니며/불굴의 한 획으로/웃고 달려가는/…걸레 수묵''(빗자루를…중)

김기창 화백의 바보 산수를 보고 쓴 ''빗자루를…''은 일상을 뒤엎는 웃음의 힘을 강조한다.

"걸레 자루의 일필휘지에서 전율을 느꼈죠. 그리고 허리가 꺾어지게 웃었습니다. 빗자루는 일상을 상징하는 소재, 빗자루를 탄 사람은 마녀입니다. 마녀의 검은 에너지가 현실과 부딪칠 때 폭포같은 웃음이 쏟아지지요"

김씨는 1994년 소설로 등단, 시와 소설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산문쓰기가 현실 이해를 위한 수평적인 작업이라면 시는 수직적인 상승을 가능케 한다.

김씨는 시 언어에는 호흡이 있다며 ''달리는 말을 잡아탄 듯한 원시적인 용솟음, 벅찬 혼란의 리듬감''이 시 쓰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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